국민은행 감사위원회가 이건호 은행장에게 올라가는 모든 결재서류를 정병기 상임감사위원을 반드시 거치도록 상임감사위원 직무규정을 개정한 것에 대해 경영권과 감사권의 충돌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아무리 경영진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감사라지만 은행장의 결정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은 경영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반면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국민은행으로선 감사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옹호론’도 있다. 일부에서는 정 감사가 지난 1월 정기인사 과정을 들여다본 것에 이어 마음먹고 이 행장 견제에 들어갔다는 해석도 있다.

○“경영권 행사 침해받을 수도”

은행 감사는 사후 감사 외에 사전 감사권을 갖고 있다. 국민은행도 업무계획 수립 및 예산의 편성, 직원의 상벌, 예산의 전용 등에 대해 감사가 최종 결정권자에 앞서 의사결정이 타당한지 검토할 수 있도록 사전감사 대상 업무를 규정해 놓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사전 감사권을 행사하면 웬만한 중요 경영사항에 대해 감사가 미리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문제는 국민은행 감사위원회가 은행장의 모든 결재사항을 미리 보겠다고 감사위원 직무규정을 개정한 데 있다. 중요 경영사항 외에 모든 걸 보겠다는 것은 이 행장에 대해 시시콜콜 간섭하겠다는 의도가 배어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 내부에선 “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간섭”이라며 반발하는 기류가 강하다. 행장이 모든 사안을 견제받는다면 경영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은행 경영진은 감사위원회의 결정을 일단 수용했다. 감사위원 직무규정을 바꿔 사전감사에 대한 근거를 마련한 만큼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서다. 거부할 명분을 찾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감사업무에서 사전감사 대상은 기본적으로 최소화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선 논란의 소지가 많다. 사전감사 범위가 넓어질수록 상임감사가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범위도 함께 넓어지는 셈이어서 차후에 경영책임을 물을 때 상임감사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은행 내부통제 시스템을 쇄신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 같은 방식은 행장의 경영권이 과도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민은행 감사위의 결정은 아주 이례적인 것”이라며 “행장이 결재해야 할 서류도 엄청난데 상임감사의 감사까지 받아야 하면 업무에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행장 위에 감사가 있는 옥상옥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기상황에서는 필요한 일”

일부에서는 국민은행의 최근 분위기를 고려할 때 필요한 제도라는 반응도 나온다. 은행 내부의 비리가 계속해서 터져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대책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박동순 전 국민은행 감사가 국민주택채권 위조와 도쿄지점 부당대출 등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만큼 후임 감사로서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기획재정부 출신인 정 감사는 지난 1월 선임됐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반적으로는 감사조직이 바쁘거나 힘이 센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업무기강이 해이해져 은행의 존폐가 위협받는다면 사전감사 대상을 넓힐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