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손 없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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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초하룻날 동쪽 벽에 못 박지 말고, 닷샛날 남쪽으로 가지 말며, 여드렛날 북쪽을 조심하라.” 무슨 말인가. 음양오행설과 풍수지리설을 따지던 시절에는 벽에 못 하나도 마음대로 박을 수 없었다. 특정한 날짜의 일진과 방위를 무시하고 아무 데나 못을 박으면 눈에 핏줄이 서는 등 탈이 생긴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손 없는 날’이 아니면 이사를 하거나 장을 담그는 일, 나무 심는 것조차 금했다.
민속신앙의 하나인 ‘손’은 ‘손님’을 줄인 말로 날수에 따라 동서남북으로 다니며 사람을 해코지하는 나쁜 귀신을 말한다. 옛사람들은 손이 열흘 단위로 날짜와 방향을 옮겨 다니며 온갖 훼방을 놓는다고 생각했다. 음력 끝수 1·2일에는 동, 3·4일에는 남, 5·6일에는 서, 7·8일에는 북쪽에 있으며 9·0일에는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겼다. 그래서 매월 9, 10, 19, 20, 29, 30일을 손 없는 날이라고 했다.
음력 2월9일은 ‘무방수날’이라 해서 어떤 일을 해도 해롭지 않다고 했다. 지역에 따라 ‘손 없는 날’ ‘물방수날’ ‘물방새날’로 불렸는데 ‘땅이 귀 감고 하늘이 눈 감는 날’ ‘부지깽이를 거꾸로 세워두면 운이 좋은 날’이라는 말까지 붙어다녔다. 손은 질병을 뜻하기도 해서 천연두를 마마, 손님이라 했다. 17세기 서양에서 베트남과 중국을 거쳐 들어와 전국을 휩쓸었으니 호환만큼 무서운 ‘손님’이었을 것이다. 황석영 소설 ‘손님’도 이를 빗댄 제목이다.
벌써 봄 이사철이다. 지난주 28일(음력 29)은 ‘손 없는 날’이라고 전국에서 이사대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평소 80만~100만원이던 포장이사 비용이 200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비수기 평일 비용의 세 배나 된다. ‘손 없는 날’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것은 하지 말라는 금기의 부작용이 마뜩잖다.
학자들은 “금기의 종교적 기능은 민간신앙과 관련되고, 정치적 효과는 체제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수단과 관련돼 있다”며 “그럴듯하지만 확실하지 않고 과학적인 듯하지만 과학이라 할 수 없는 것에 사로잡히는 것은 불안 심리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새 집으로 이사할 때는 설렘뿐만 아니라 불안한 마음도 갖게 된다. 그러나 특정 날짜를 정해놓고 한꺼번에 몰려서 돈을 두 배, 세 배 들여가며 자정까지 난리를 치는 건 좀 그렇다. ‘손 없는 날’ 이사하려다 손해를 봐서야 되겠는가. 하기야 이사는 연쇄 반응이기도 해서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민속신앙의 하나인 ‘손’은 ‘손님’을 줄인 말로 날수에 따라 동서남북으로 다니며 사람을 해코지하는 나쁜 귀신을 말한다. 옛사람들은 손이 열흘 단위로 날짜와 방향을 옮겨 다니며 온갖 훼방을 놓는다고 생각했다. 음력 끝수 1·2일에는 동, 3·4일에는 남, 5·6일에는 서, 7·8일에는 북쪽에 있으며 9·0일에는 하늘로 올라간다고 여겼다. 그래서 매월 9, 10, 19, 20, 29, 30일을 손 없는 날이라고 했다.
음력 2월9일은 ‘무방수날’이라 해서 어떤 일을 해도 해롭지 않다고 했다. 지역에 따라 ‘손 없는 날’ ‘물방수날’ ‘물방새날’로 불렸는데 ‘땅이 귀 감고 하늘이 눈 감는 날’ ‘부지깽이를 거꾸로 세워두면 운이 좋은 날’이라는 말까지 붙어다녔다. 손은 질병을 뜻하기도 해서 천연두를 마마, 손님이라 했다. 17세기 서양에서 베트남과 중국을 거쳐 들어와 전국을 휩쓸었으니 호환만큼 무서운 ‘손님’이었을 것이다. 황석영 소설 ‘손님’도 이를 빗댄 제목이다.
벌써 봄 이사철이다. 지난주 28일(음력 29)은 ‘손 없는 날’이라고 전국에서 이사대란이 벌어졌다고 한다. 평소 80만~100만원이던 포장이사 비용이 200만원 이상으로 뛰었다. 비수기 평일 비용의 세 배나 된다. ‘손 없는 날’을 택하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것은 하지 말라는 금기의 부작용이 마뜩잖다.
학자들은 “금기의 종교적 기능은 민간신앙과 관련되고, 정치적 효과는 체제와 질서를 유지하려는 수단과 관련돼 있다”며 “그럴듯하지만 확실하지 않고 과학적인 듯하지만 과학이라 할 수 없는 것에 사로잡히는 것은 불안 심리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새 집으로 이사할 때는 설렘뿐만 아니라 불안한 마음도 갖게 된다. 그러나 특정 날짜를 정해놓고 한꺼번에 몰려서 돈을 두 배, 세 배 들여가며 자정까지 난리를 치는 건 좀 그렇다. ‘손 없는 날’ 이사하려다 손해를 봐서야 되겠는가. 하기야 이사는 연쇄 반응이기도 해서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