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상봉 대상자 중에는 2명의 납북 어부와 3명의 전시 납북자 가족들도 포함돼 감격적인 재회를 했다. 전후 납북자는 어부 450여명, 군·경 30여명 등 모두 530여명이 되는 것으로 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박양곤 씨(53)는 1972년 서해에서 조업하다 납북됐던 오대양호 선원 형 양수씨(59)와 형수 이순녀 씨(54)를 만났다. 3남1녀 중 둘째였던 양수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동생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열여섯 살에 선원이 됐다.

양곤씨는 형과 끌어안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행님아”하고 인사하고는 다시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형 양수씨는 얼마 전 큰형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양곤씨는 “양친께서 임종하실 때까지 형의 소식을 궁금해 하셨다”고 전했다.

양수씨는 흰 봉투에 담아온 선물명세와 훈장을 들어 보이며 “당의 배려로 이렇게 잘산다”고 말했다. 양수씨와 양곤씨는 꼭 닮았지만 양수씨는 고향인 경상도 말씨가 아닌 북한 말씨를 썼다.

최선득 씨(71)도 납북 어부인 동생 영철씨(61)와 제수 박순화 씨(60)를 만났다. 영철씨는 1974년 백령도 인근에서 저인망 어선 수원33호에서 조업 중 납북됐다. 영철씨가 형에게 “얼마만이야”라고 하자 선득씨는 “40년 전 얼굴 그대로다”며 눈물을 지었다. 선득씨가 “7남매 중 나머지 형제들이 모두 살아있다”며 “함께 왔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전시 납북자인 아버지 최종석 씨(사망)의 북측 이복형제들을 만나러 온 최남순 씨(64)는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씨는 이복동생들이 아버지의 사진을 보여주자 얼굴이 굳어지며 “내가 알고 있던 아버지 얼굴과 다르고 직업도 고향도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최씨는 “이것도 인연이니 의형제라고 생각하고 끝날 때까지 만나자”고 했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최씨가 두 살 때 아버지와 헤어졌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니 만큼 사실관계를 혼동할 수 있다”고 했다. 적십자사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금강산=공동취재단/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