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별의별 눈(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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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로맨틱하게, 사색적이게, 때로는 몽환적 분위기로 따지면 겨울철 눈만한 게 없다. 무거운 잿빛 하늘이 내려오면서 너무도 가벼운 눈송이가 사방으로 내려앉는다. 바람은 눈발의 연출가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나라였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이렇게 시작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애상적, 이국적이라면 발랄라이카의 음색이 애잔한 영화 ‘닥터 지바고’의 거대한 설원은 운명적, 서사적 눈 이야기다. 눈 내리는 밤을 ‘먼-곳에 여인의 옷벗는 소리’(설야)라 했던 김광균은 역시 앞서간 모더니스트였다.
눈이 빚어내는 분위기 만큼이나 눈의 종류도 다양하다. 싸락눈 함박눈은 기본, 진눈깨비와 눈보라, 소나기눈도 있다. 도둑눈은 일찍 잠든 아이들에게 늘 작은 경이였고 첫눈은 뭇 연인들에게 거사의 그날을 선사한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은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을 작게 만들었고 설화(눈꽃)는 겨울등반을 즐기는 등산객들에겐 늘상 유혹이다. 잔설이 힘든 계절의 상흔 같은 것이라면 봄눈은 만물생동의 새 계절에 대한 시샘이다. 한 길만큼 쌓였대서 길눈이고 전인미답의 깨끗한 눈은 숫눈이라 한다. 만년설, 가랑눈, 복(福)눈, 자국눈, 가루눈, 찬눈…. 에스키모 언어에 눈에 관한 단어들이 발달했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도 못지 않다.
지금 영동지방에선 습설(濕雪)이 문제다. 9일간 110㎝, 최근 폭설 피해는 젖은 함박눈 때문이다. 영하 10도 이하에서 주로 12~1월에 가루로 날리는 건설(乾雪)과 달리 습설은 영하1~영상1도인 2~3월에 잦다. 이번엔 강설량도 많았지만 물기의 무게로 피해가 더 커졌다고 한다. 사방이 눈천지인데 식수가 끊겼으니 물난리 때 식수난 같은 상황이다. 인명 피해까지 난 판에 노루 고라니 걱정은 호사일 것이다.
미국도 동부지역이 눈 때문에 대혼란이다. 2010년 대폭설 당시의 스노마겟돈(snowmaggedon·눈+아마겟돈)이 재현됐다고 해서 난리다. 항공편 6000편 결항, 75만 가구 정전…. 눈 때문에 내린 임시휴교 조치를 둘러싼 논란도 주목을 끌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면 기사에다 교육당국을 비판하는 사설까지 게재하기도 했다.
103년 기상관측 이래 영동지방에 내린 최장·최고의 폭설이라고 하는데 아직 끝이 아닌 모양이다. 오늘부터 사흘간 최대 30㎝가 더 온다고 한다. 과학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아직 대자연 앞의 인간은 작다. 늘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예보라도 있으니 속절없이 당하지는 않는 것에 그나마 위안해야 하나.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눈이 빚어내는 분위기 만큼이나 눈의 종류도 다양하다. 싸락눈 함박눈은 기본, 진눈깨비와 눈보라, 소나기눈도 있다. 도둑눈은 일찍 잠든 아이들에게 늘 작은 경이였고 첫눈은 뭇 연인들에게 거사의 그날을 선사한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은 대자연 앞에 선 인간을 작게 만들었고 설화(눈꽃)는 겨울등반을 즐기는 등산객들에겐 늘상 유혹이다. 잔설이 힘든 계절의 상흔 같은 것이라면 봄눈은 만물생동의 새 계절에 대한 시샘이다. 한 길만큼 쌓였대서 길눈이고 전인미답의 깨끗한 눈은 숫눈이라 한다. 만년설, 가랑눈, 복(福)눈, 자국눈, 가루눈, 찬눈…. 에스키모 언어에 눈에 관한 단어들이 발달했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도 못지 않다.
지금 영동지방에선 습설(濕雪)이 문제다. 9일간 110㎝, 최근 폭설 피해는 젖은 함박눈 때문이다. 영하 10도 이하에서 주로 12~1월에 가루로 날리는 건설(乾雪)과 달리 습설은 영하1~영상1도인 2~3월에 잦다. 이번엔 강설량도 많았지만 물기의 무게로 피해가 더 커졌다고 한다. 사방이 눈천지인데 식수가 끊겼으니 물난리 때 식수난 같은 상황이다. 인명 피해까지 난 판에 노루 고라니 걱정은 호사일 것이다.
미국도 동부지역이 눈 때문에 대혼란이다. 2010년 대폭설 당시의 스노마겟돈(snowmaggedon·눈+아마겟돈)이 재현됐다고 해서 난리다. 항공편 6000편 결항, 75만 가구 정전…. 눈 때문에 내린 임시휴교 조치를 둘러싼 논란도 주목을 끌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면 기사에다 교육당국을 비판하는 사설까지 게재하기도 했다.
103년 기상관측 이래 영동지방에 내린 최장·최고의 폭설이라고 하는데 아직 끝이 아닌 모양이다. 오늘부터 사흘간 최대 30㎝가 더 온다고 한다. 과학 기술이 발달했다지만 아직 대자연 앞의 인간은 작다. 늘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예보라도 있으니 속절없이 당하지는 않는 것에 그나마 위안해야 하나.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