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첫 원조받던 해 태어나 '마지막 차관' 받은 1992년 입사
290억달러 펀드 관리감독 총괄…"한국 개발경험, 국제적으로 인정"
한국인 여성 처음으로 국제금융기구 고위직에 임명된 그를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세계은행 본사에서 만났다. 소 국장은 “개도국을 돕는 세계은행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운 일인데, 최근 한국의 개발경험이 많은 개도국의 성장모델로 부각돼 세계은행의 한국인 직원이라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은행이 ‘은행’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지식기관’”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개발 경험과 노하우인데 한국이 이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에서 물·위생프로그램 담당 과장으로 일해 온 그는 이날 양허성자금 국제협력부(CFP) 신임 국장에 임명됐다. 290억달러 규모의 트러스트펀드를 관리·감독하고 정책집행을 총괄한다. 원조를 받던 가난한 한국의 ‘딸’이 세계 최대 원조기관에서 자금집행 총책에 오른 셈이다.
그는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와 동대학 MBA를 졸업하고 컨설팅회사인 모니터그룹에서 일하다 1992년 세계은행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아버지가 유엔개발계획(UNDP)에 근무하신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 소문섭씨는 1970년대 중반 UNDP 대표보를 활동했다. “부모님을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로 갔을 때, 아버지가 ‘학교에 가면 다른 나라 학생들이 많을 텐데 너는 여기서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점을 명심해라. 무엇을 하더라도 한국인을 대표한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늘 이런 생각을 갖고 자랐기 때문에 저에게 한국 국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이어 “김용 총재가 오셔서 한국의 위상이 더 높아졌다”며 환하게 웃었다.
소 국장은 세계은행, UNDP,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 입사에 관심 있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조언도 했다. “첫째는 개도국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중요합니다. 방학 때 개도국 봉사활동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또 한국 학생들은 어른과 교사의 말을 잘 따르는 데 익숙하잖아요. 하지만 국제기구에선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뚜렷하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중요합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