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캐시미어에 '급'이 다른 예술을 불어넣다
브루넬로 쿠치넬리
브루넬로 쿠치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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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풀한 캐시미어 옷은 패션의 혁명이 될 것이다.”

1974년 이탈리아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하던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대학을 그만두고 패션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인간의 가치에 도움을 주는 휴머니스트 기업(humanist enterprise)을 꿈꿔왔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캐시미어(캐시미어 산양의 털로 짠 직물)였다. 가공법이 매우 까다롭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늘 달려 패션업에서도 전문 영역이라는 점이 공학도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4년 뒤인 1978년, 그가 이탈리아 페루자의 40㎡짜리 작은 공방에서 완성한 첫 번째 캐시미어 컬렉션이 세상에 선보였다.

‘캐시미어의 왕’이라 불리는 이탈리아 명품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캐시미어는 당시에도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인기 품목이었지만, 그의 캐시미어 의류는 기존의 단조로운 상품과는 달랐다. 무지갯빛을 연상시키는 다채로운 색상의 캐시미어 스웨터로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자칫 밋밋하고 고루해 보일 수 있는 캐시미어는 쿠치넬리의 손을 거쳐 새로운 패션 아이콘으로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범한 캐시미어에 '급'이 다른 예술을 불어넣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골드만삭스가 작년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최상위인 ‘절대강자(absolute)’ 클래스로 꼽혔다. 에르메스, 로로 피아나, 보테가 베네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루이비통 버버리 구찌 등은 열망적인(aspirational), 휴고보스 아르마니 등은 접근 가능한(accessible) 그룹으로 분류돼 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몽골산 최고급 캐시미어를 쓴다. 몽골산만 고집하는 것은 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5분의 1인 14 마이크로미터(㎛)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서다. 특히 산양의 목 아랫부분 쪽 미세섬유만을 사용해 보온성이 탁월한 게 강점으로 꼽힌다. 캐시미어뿐 아니라 혼용하는 순면, 실크 등도 반드시 자연산만 쓴다. 옷이 직접 피부에 닿아도 자극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패션 강국’ 이탈리아 브랜드답게 현지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전통문화를 반영한 세련된 디자인도 특징이다. 사업이 성공가도를 달리자 1985년 쿠치넬리는 페루자에서 14세기 말에 지어진 솔로메오성(城)을 사들여 이곳으로 본사를 옮겼다.

솔로메오는 브루넬로 쿠치넬리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에 핵심 요소로 꼽힌다. 고풍스러운 이 성곽의 이미지는 브랜드 로고에 쓰이고 있으며, 전 세계 임직원의 70%인 700여명이 솔로메오에서 일하고 있다. 이 지역 주민 대부분이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직원이다.
평범한 캐시미어에 '급'이 다른 예술을 불어넣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주력 상품인 캐시미어 니트를 비롯해 여성복, 남성복, 액세서리, 신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꾸준한 연구개발(R&D)을 통해 니트웨어 산업의 독보적 명품 브랜드로 위상을 굳혔다. 지난해 전체 매출의 65%를 해외에서 올렸다.

모든 생산공정을 이탈리아 장인들이 직접 처리하는 만큼 값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 높은 편이다. 카디건과 머플러는 100만~200만원대, 여성 가죽 재킷은 600만~900만원대, 남성 슈트는 500만원 안팎의 가격표가 붙는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팬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다. 이 브랜드는 한국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 국내 가격을 평균 15%가량 내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올 상반기에는 그동안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모든 남성복 라인을 두루 갖춘 전문 매장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