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한국노총 위원장에 바란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노사정 대화 복귀는 없다.” 김동만 한국노총 신임 위원장이 엊그제 당선이 확정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힌 말이다. 철도노조원의 불법파업과 관련해 민주노총에 공권력을 투입한 데 대해 정부가 먼저 사과부터 하란 얘기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들러리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러면서 “공공부문 노동탄압 분쇄를 위해 양대노총이 경계선을 허물고 큰 싸움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선언해 정부의 공공개혁에 제동을 걸 뜻임을 분명히 했다. 후보자 정견발표 때도 그는 정부의 ‘방만경영 정상화 계획 운영지침서’를 찢으며 “정부의 기만적인 공공부문 노동탄압에 맞서 투쟁하겠다”고 밝혀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하루빨리 사회적 대화 참여해야

하지만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 거부를 선언한 배경에는 위원장 선거와 맞물렸기 때문이란 해석이 많다. 합리적 노선보다 강성 이미지가 리더십의 자질로 더 인정받는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에서 후보들은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투사’ 이미지를 덧씌워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공권력 투입을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철도노조의 불법파업에 대해 한국노총 현장 조합원들 사이에선 ‘철밥통 노조의 명분 없는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판이 많았지만 위원장 후보들은 불법파업을 지지했다. 일선 조합원들은 노조지도부가 사용자 측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즐긴다. 노사관계가 협조적인 것보다는 뭔가 갈등을 빚어야 회사로부터 얻을 게 많아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교적 온건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받던 김 위원장은 이번 선거에선 ‘강성’으로 분류됐다. 최대 라이벌이었던 문진국 전임 위원장이 보수성향이 강하고 새누리당 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은 데 반해 김 위원장은 정치적으로 민주당과 친했고 박근혜 정부와 다소 대립적 입장을 갖고 있었다.

권리보다 일자리 창출 고민할 때

이 때문에 통상임금문제,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 상급단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등 핵심이슈와 관련해 앞으로 한국노총이 합리적 대안보다는 노동계와 야당의 입맛에 맞는 주장들을 늘어 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오는 6월 실시될 지방선거에 한국노총이 끼어들어 현정부 흔들기에 가세한다면 정치적 판세가 상당히 복잡해지고 기업들은 예상외의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적 이슈가 많아 노사정 간 의견수렴을 필요로 하는 요즘 한국노총의 사회적 대화 참여는 빠를수록 좋다. 민주노총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에 대해 ‘선 사과 후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나 공공부문 개혁을 계속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이제 노동운동의 상급단체로서 중심을 잡고 제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다. 여론의 향방이나 분위기에 따라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와 탈퇴를 밥먹듯이 한다면 한국노총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질 것이다. 노사정 내에서 민주노총 지도부의 입지가 약한 것은 이처럼 일관성 없이 내몫만 챙겨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투쟁과 갈등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전체 근로자가 잘사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위원장이 됐으면 한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좋은일터연구소장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