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채용시스템 개편…사회적 비용 줄여
경진대회 수상, 인턴십 활동, 직무 자격증 우대
어학연수 등 '보여주기식 스펙'은 오히려 불리
SSAT '논리적 사고'에 비중…역사 문제도 확대
삼성이 15일 공채 제도를 바꾸기로 한 것은 과도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삼성이 1995년 ‘열린 공채’ 도입 이후 20년 만에 공채 제도를 크게 손질하면서 채용 시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서류전형 통과하려면 어떻게
바뀐 점은 크게 두 가지다. 서류전형을 도입해 응시 인원을 기존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인 것과 SSAT 문제 유형을 지식·암기력 위주에서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삼성 취업 준비생들에겐 ‘서류전형 통과’라는 난제가 생겼다. 다만 삼성은 ‘열린 공채’의 정신을 살려 과거처럼 출신 대학, 학점 등 특정한 잣대를 적용해 탈락시키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용기 삼성전자 인사팀장(전무)은 “소모적이고 획일화된 ‘스펙 경쟁’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지원하는 직무 전문성을 중점 평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공채 지원자들은 이달 말부터 지원 서류를 수시로 낼 수 있는데 이때 △세부 학업 내역 △전문성을 쌓기 위한 준비 과정 및 성과 △가치관 평가를 위한 에세이 등을 제출해야 한다.
삼성은 이를 통해 이공계는 전공과목 성취도를, 인문계는 직무 관련 활동·경험을 중점 평가할 계획이다. 즉 연구개발직 지원자의 경우 △산학협력 과제 참여 △각종 논문상 △경진대회 수상 경력 등을, 영업마케팅직과 디자인광고직은 △직무 관련 경진대회 수상 △인턴십 등 실무경험 △직무 관련 자격증 등을 갖춘 사람을 우대하는 식이다.
박 팀장은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등 보여주기식 스펙을 쌓기보다는 직무와 관계된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전공 수업을 착실하게 듣는 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이렇게 서류전형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상·하반기 SSAT 응시 기회를 줄 계획이다.
삼성은 서류전형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국 200여개의 4년제 대학 총장 추천을 받은 5000여명(연간)과 삼성이 주요 대학 캠퍼스를 찾아가 실시하는 ‘찾아가는 열린 채용’ 프로그램을 통과한 지원자에겐 서류전형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SSAT는 어떻게 바뀌나
서류전형 통과 후 치르는 SSAT도 종합적·논리적 사고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개편된다.
우선 기존 △언어 △수리 △추리 △(직무)상식 등 4개 영역에 공간지각력 분야를 추가해 5개 분야로 개편한다. 또 언어 수리 상식 영역에서는 그동안 지식·암기력 중심 질문이 많았는데, 이를 논리적 사고가 필요한 문제로 바꾸기로 했다. 지식을 외운 사람보다는 독서와 경험을 통해 생각의 깊이를 키운 사람에게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상식 영역에서 인문학, 특히 역사와 관련된 문항을 확대할 방침이다. 전문화된 시대에 역사를 통해 종합적인 시각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다.
○삼성 공채 왜 바꾸나
삼성은 1995년 서류전형을 없애는 ‘열린 공채’를 시작한 뒤 공채 제도에 크게 손을 대지 않았다. 열린 공채의 핵심은 서류전형 없이 학점(4.5 만점에 3 이상)과 어학성적(토익 OPIc 등) 등만 갖추면 SSAT 응시 기회를 줬다. 이러다 보니 작년 하반기 공채엔 10만명이 넘게 몰렸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고, 비효율이 발생했다.
문제는 그뿐만 아니다. 입사 지원자가 늘면서 SSAT 사교육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상당수 사설학원이 SSAT 대비 강의를 개설해 수강료로 5만~25만원을 받고 있다. 또 권당 2만원 안팎인 SSAT 관련 서적도 50여종 출간돼 있다.
다만 다른 그룹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서류전형을 통해 10배수에 필기시험 응시 기회를 주는 등 대부분 서류전형을 실시하고 있어서다.
취업준비생 반응 "지원 기회 줄어들어", "직무활동 경험 모호"
삼성의 공채 제도 개편에 대해 채용시장의 반응은 엇갈렸다. 취업 전문가들은 대체로 삼성 측 의도대로 스펙 쌓기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을 내놨다. 하지만 취업준비생 중에는 지원 기회가 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서울 모 대학에 다니는 진수용 씨(25)는 “삼성 공채는 좋지 못한 스펙을 가진 취업준비생에게 최고의 열린 채용이었는데, 앞으로 기회가 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병호 씨(27)는 “서류전형 기준인 직무활동 경험이란 게 모호해 뭔가 또 다른 스펙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반면 김금진 씨(25)는 “웬만하면 SSAT를 보게 해 모든 취업준비생에게 쓸데없는 희망을 주느니, 서류전형을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긍정적이었다. 유희석 서강대 취업지원팀장은 “3학년 전공심화과정 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몰두했었는데 앞으로 전공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교과목 이외 다른 분야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기회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윤선 원광대 취업개발처 교수는 “총·학장 추천제로 지방대생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취업 인·적성을 강의하는 이완 아이진로 대표는 “삼성이 서류전형에서 구글의 바이오데이터 같은 객관적 평가를 추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