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올랑드 스캔들
1899년 2월 프랑스 대통령 펠릭스 포르가 정부(情婦)를 몰래 엘리제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녀는 화가 남편을 둔 유부녀였다. 두 사람이 밀실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급한 벨소리가 울렸다. 놀란 하인들이 달려갔다. 대통령은 소파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결국 몇 시간 뒤 세상을 떠났다. 밀애 사실은 하인들의 입으로만 전해졌을 뿐 공식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다.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여배우 마를렌 조베르의 집에서 자고 새벽에 파리 시내로 들어오다 고속도로 요금소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현직 대통령이 경호원과 운전기사도 없이 엘리제궁을 빠져나가 ‘밤이슬’을 맞고 다닌 이 사건도 사생활이라는 이유로 덮어졌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은 대놓고 ‘두 집 살림’을 했다. 부인과 결혼한 상태에서 연인과의 관계를 지속했고 그 사이에서 딸 마자린을 낳기도 했다. 미테랑의 이중생활은 1996년 그의 장례식에 마자린이 등장했을 때에야 공개됐다. 시라크 전 대통령도 ‘샤워 포함 15분’이라는 별명만큼의 소문난 바람둥이였으나 ‘사생활 보호’ 덕분에 무사히 임기를 마쳤다.

프랑스가 대통령의 불륜에 관대한 것은 공적인 직무 외의 생활은 누구나 보호받아야 할 사적 영역이라는 프랑스인 특유의 정서 때문이다. 비록 정적이라도 상대의 배꼽 아래를 언급하면 바로 역풍을 맞을 정도다.

하지만 2007년 대선 때부터 이런 관행이 깨지기 시작했다. 사르코지 후보가 부인 말고 띠동갑인 유명 가수 브루니와 동거하고 있다는 게 알려졌다. 사르코지는 서둘러 부인과 공식 결별하고 브루니와 결혼 계획을 발표하며 사태를 수습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심각한 모양이다. 올랑드 대통령이 밤마다 스쿠터를 타고 나가 여배우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냈다는 폭로가 나오자 정론지들까지 이례적으로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프랑스인들의 정서가 바뀐 것일까. 문제는 ‘경제’였다. 당선 직후 “부자를 싫어한다”며 사회주의적 색깔을 앞세웠던 그의 ‘복지 증세’ 정책으로 국민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스캔들이 터져나온 것이다.

실업률은 높고 일자리는 줄어드는 마당에 세금은 자꾸 늘어나니 모든 이의 반응이 날카로울 수밖에 없다. 이번 염문이 대통령을 망치는 건 괜찮지만 프랑스를 망치는 건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도 나온다. 오늘 프랑스의 경제 회복 방안 등 새해 정책 방향을 발표할 올랑드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다음달 미국 방문 때 동행할 퍼스트레이디는 또 누가 될 것인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