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치권의 이상한 철도파업 종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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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通이미지 깨기 위한 정치적 흥정
철도파업 구조화할 명분만 부여
편의 아닌 원칙대응이 진정한 소통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철도파업 구조화할 명분만 부여
편의 아닌 원칙대응이 진정한 소통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권투경기의 마지막 라운드 공이 울렸다. 선수들은 사력을 다했지만 승패는 충분히 예측가능했다. 기량 차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이때 링 사이드에서 누군가 흰 타월을 던졌다. 심판은 이를 선수 진영에서 던진 타월로 착각했다. 승자를 가릴 수 있었던 경기는 이렇게 중단됐다.
철도파업 철회를 빗댄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4명은 세모(歲暮)인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토위에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철도파업을 철회하기로 여야와 철도노조 지도부가 합의했다”고 밝혔다. 국토위는 즉각 소위를 구성했고 철도노조는 31일 파업을 풀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덮는 것은 다르다. 대화와 타협이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방향성을 갖지 못한 합의는 오히려 사태를 구조화시킬 수 있다. 정치권의 개입으로 철도노조는 퇴로를 확보하고 파업의 불씨를 살릴 수 있게 됐다. 정치권과 합의한 ‘철도발전소위’에의 참여가 그 통로다. 철도노조는 소위원회 성격을 ‘민영화반대 소위’로 규정하고 철도 분할과 민영화 저지투쟁을 현장투쟁으로 전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진지전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지원사격이 빠질 리 없다. 유시민 전 장관은 한 TV 토론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4000달러인 나라에서 평균 근속이 19년인 가장이 받은 연봉 6300만원이 귀족이면 나머지 국민은 천민입니까”라는 주장을 폈다. 평균 연봉 6300만원은 4인 가족 평균 소득 1억1000만원(달러 표시 9만6000달러)의 반을 조금 넘는 금액이라는 것이다. 귀족노조가 아닌 평범한 근로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국민소득과 급여’를 억지 비교한 것이다. 반대 질문이 오히려 더 적절하다. 만약 코레일이 매년 적자를 내는 사기업이었다면 그만한 평균 연봉을 지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코레일 기관사와 고속버스 기사, 열차표 판매원과 고속버스표 판매원의 급여가 정당한 생산성의 차이에 기초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철도노조는 그동안 정치적 수단을 통해 급여의 일부를 국민에게 부담지워왔다. 귀족노조는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그는 수서발 KTX 자회사 신설이 자회사를 민영화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라면 이는 ‘차악’을 버리고 ‘최악’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도, 상수도, 통신 같은 망(網)산업은 ‘규모의 경제’로 독점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차악으로 국가독점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어야 하며 내부경쟁을 하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독점과 공공성 확보 등의 명분으로 존속해 왔던 거대 공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민영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한국도 독점의 상징이었던 항공, 통신, 철강, 정유 등이 민영화를 통해 시장에서 소비자 지향의 경쟁을 하면서 세금을 내는 주체로 탈바꿈했다. 철도 상하(운영·시설) 분리에 이은 운송사업자 간의 복수경쟁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합리적 대안이다.
그러면 여권이 ‘왜 정치적 흥정에 가까운’ 결정을 내렸는가 하는 합리적 의문이 제기된다. 개인적인 정치소득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선의로 해석하면 여권에 대한 ‘불통 이미지’를 깨기 위함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불통 낙인’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한국 사회에서 불통과 소통은 저급한 용어로 변질된 지 오래다. 정치적으로 이익이면 소통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통이기 때문이다. 소통은 정합논리와 법치에 기초해야 한다. ‘원칙’을 무너뜨리고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 소통일 수는 없다. 정치권의 섣부른 합의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불법파업을 원칙에 의거해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앗아갔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떠오른다. ‘아서왕’으로 불리던 석탄노조를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단호함이었다. 때를 놓치지 않는 정치적 판단력 및 법과 원칙의 준수라는 철학이 그녀의 정치자산이었던 것이다. 한국 정치인의 정치자산은 무엇인가?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
철도파업 철회를 빗댄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4명은 세모(歲暮)인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토위에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철도파업을 철회하기로 여야와 철도노조 지도부가 합의했다”고 밝혔다. 국토위는 즉각 소위를 구성했고 철도노조는 31일 파업을 풀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덮는 것은 다르다. 대화와 타협이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 방향성을 갖지 못한 합의는 오히려 사태를 구조화시킬 수 있다. 정치권의 개입으로 철도노조는 퇴로를 확보하고 파업의 불씨를 살릴 수 있게 됐다. 정치권과 합의한 ‘철도발전소위’에의 참여가 그 통로다. 철도노조는 소위원회 성격을 ‘민영화반대 소위’로 규정하고 철도 분할과 민영화 저지투쟁을 현장투쟁으로 전환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진지전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지원사격이 빠질 리 없다. 유시민 전 장관은 한 TV 토론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4000달러인 나라에서 평균 근속이 19년인 가장이 받은 연봉 6300만원이 귀족이면 나머지 국민은 천민입니까”라는 주장을 폈다. 평균 연봉 6300만원은 4인 가족 평균 소득 1억1000만원(달러 표시 9만6000달러)의 반을 조금 넘는 금액이라는 것이다. 귀족노조가 아닌 평범한 근로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국민소득과 급여’를 억지 비교한 것이다. 반대 질문이 오히려 더 적절하다. 만약 코레일이 매년 적자를 내는 사기업이었다면 그만한 평균 연봉을 지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코레일 기관사와 고속버스 기사, 열차표 판매원과 고속버스표 판매원의 급여가 정당한 생산성의 차이에 기초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철도노조는 그동안 정치적 수단을 통해 급여의 일부를 국민에게 부담지워왔다. 귀족노조는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그는 수서발 KTX 자회사 신설이 자회사를 민영화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라면 이는 ‘차악’을 버리고 ‘최악’을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도, 상수도, 통신 같은 망(網)산업은 ‘규모의 경제’로 독점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차악으로 국가독점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기업 체제를 유지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어야 하며 내부경쟁을 하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독점과 공공성 확보 등의 명분으로 존속해 왔던 거대 공기업들이 전 세계적으로 민영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한국도 독점의 상징이었던 항공, 통신, 철강, 정유 등이 민영화를 통해 시장에서 소비자 지향의 경쟁을 하면서 세금을 내는 주체로 탈바꿈했다. 철도 상하(운영·시설) 분리에 이은 운송사업자 간의 복수경쟁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합리적 대안이다.
그러면 여권이 ‘왜 정치적 흥정에 가까운’ 결정을 내렸는가 하는 합리적 의문이 제기된다. 개인적인 정치소득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선의로 해석하면 여권에 대한 ‘불통 이미지’를 깨기 위함이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불통 낙인’을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 한국 사회에서 불통과 소통은 저급한 용어로 변질된 지 오래다. 정치적으로 이익이면 소통이고 그렇지 않으면 불통이기 때문이다. 소통은 정합논리와 법치에 기초해야 한다. ‘원칙’을 무너뜨리고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 소통일 수는 없다. 정치권의 섣부른 합의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불법파업을 원칙에 의거해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앗아갔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떠오른다. ‘아서왕’으로 불리던 석탄노조를 굴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단호함이었다. 때를 놓치지 않는 정치적 판단력 및 법과 원칙의 준수라는 철학이 그녀의 정치자산이었던 것이다. 한국 정치인의 정치자산은 무엇인가?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