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빼는 美…'우산' 잃은 중동, 혼란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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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셰일에너지 개발로 관심 줄며 '힘의 공백'
사우디·이란 간 주도권 다툼이 종파갈등으로 비화
사우디·이란 간 주도권 다툼이 종파갈등으로 비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설은 모두 거짓이다.”(사우드 알파이살 사우디 외무장관, 5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의 회담 뒤)
“미국과 이란의 평화 협상은 위험한 도박이다. 사우디는 더 이상 조용히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무함마드 빈 나와프 주영국 사우디대사, 지난달 18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두 명의 사우디 정부 고위직 관료가 최근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내놓은 상반된 말이다. 최근 미국의 대(對) 중동 정책에 대한 사우디의 복잡한 심사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집트, 시리아 등 중동 각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대신 이란 핵 협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정에 ‘올인’하고 있다. 사우디 등 지역 우방과 협력해 이라크 전쟁 등에 적극 개입해온 과거 정부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의 이 같은 정책 변화로 중동 각국의 갈등이 오히려 심화되면서 ‘무책임한 외교’라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은 겉으로는 중동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국무부를 인용, 케리 장관이 전체 일정의 절반 정도를 중동에서 보냈다고 전했다. 케리 장관은 지난 2~5일에도 사우디, 이스라엘 등을 방문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중동을 떠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은 2011년 이집트에서 ‘우군’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축출될 당시 “이집트의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며 간섭하지 않았다. 리비아, 시리아의 내전에도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시리아의 경우 사우디가 직접 나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무기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케리 장관은 5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혼란에 빠진 이라크에 대해서도 “군사 지원은 하되 군사를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의 탈(脫) 중동 외교기조는 최근 셰일에너지 개발로 중동에 대한 의존도가 약해진데다 2008년부터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미국의 빈자리를 대신할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이슬람교 종파 라이벌인 사우디(수니파)와 이란(시아파)이 서로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중동의 혼란이 심해지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이란이 정부군을 훈련시키고 있는 반면 사우디는 반군에 돈을 대고 있다. 최근 사우디는 친수니파인 레바논 정부를 위해 30억달러의 군사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라크에서도 미국이 철군을 결정하면서 강경 수니파 계열인 알카에다가 다시 활개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사라진 뒤 중동은 새 질서를 만드는 대신 종파라는 기존 질서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 갈등은 ‘끝없는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그레고리 가우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우디가 미국을 대체하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FT는 “중동 국가들도 언젠가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독립해야겠지만, 현재로선 미국을 대체할 우산(안전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미국과 이란의 평화 협상은 위험한 도박이다. 사우디는 더 이상 조용히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무함마드 빈 나와프 주영국 사우디대사, 지난달 18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두 명의 사우디 정부 고위직 관료가 최근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내놓은 상반된 말이다. 최근 미국의 대(對) 중동 정책에 대한 사우디의 복잡한 심사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는 이집트, 시리아 등 중동 각국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대신 이란 핵 협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협정에 ‘올인’하고 있다. 사우디 등 지역 우방과 협력해 이라크 전쟁 등에 적극 개입해온 과거 정부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미국의 이 같은 정책 변화로 중동 각국의 갈등이 오히려 심화되면서 ‘무책임한 외교’라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은 겉으로는 중동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국무부를 인용, 케리 장관이 전체 일정의 절반 정도를 중동에서 보냈다고 전했다. 케리 장관은 지난 2~5일에도 사우디, 이스라엘 등을 방문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중동을 떠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은 2011년 이집트에서 ‘우군’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축출될 당시 “이집트의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며 간섭하지 않았다. 리비아, 시리아의 내전에도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 시리아의 경우 사우디가 직접 나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무기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케리 장관은 5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혼란에 빠진 이라크에 대해서도 “군사 지원은 하되 군사를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의 탈(脫) 중동 외교기조는 최근 셰일에너지 개발로 중동에 대한 의존도가 약해진데다 2008년부터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외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미국의 빈자리를 대신할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이슬람교 종파 라이벌인 사우디(수니파)와 이란(시아파)이 서로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중동의 혼란이 심해지고 있다. 시리아에서는 아사드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이란이 정부군을 훈련시키고 있는 반면 사우디는 반군에 돈을 대고 있다. 최근 사우디는 친수니파인 레바논 정부를 위해 30억달러의 군사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라크에서도 미국이 철군을 결정하면서 강경 수니파 계열인 알카에다가 다시 활개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사라진 뒤 중동은 새 질서를 만드는 대신 종파라는 기존 질서로 회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교 갈등은 ‘끝없는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그레고리 가우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우디가 미국을 대체하기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FT는 “중동 국가들도 언젠가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독립해야겠지만, 현재로선 미국을 대체할 우산(안전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