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경마보다 승마] "골프 다음엔 승마"…'소득 3만弗 스포츠' 고삐 당긴다
#1. 서울의 한 중학교에 다니는 채승진 군(15)은 지난해 3월 토요스포츠데이 때 승마를 배우기 시작한 뒤 생활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새벽까지 컴퓨터 게임을 하던 습관이 사라지고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게 된 것. 승마를 배운 뒤 집중력도 좋아져 반에서 20등대에 머무르던 성적이 10등대 초반까지 뛰었다.

#2.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일하는 직장인 윤혜림 씨(29)는 1주일에 두세 번씩 인천 장수동 인천승마장에서 승마를 즐긴다. 윤씨는 “살아 있는 말과 교감하면서 흐트러진 몸의 밸런스를 잡고 몸매도 가꿀 수 있다”며 승마 예찬론을 폈다.

“예약 안 하면 말 못 타”

[커버 스토리-경마보다 승마] "골프 다음엔 승마"…'소득 3만弗 스포츠' 고삐 당긴다
말(馬) 산업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승마인구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데다 ‘말 갈라쇼’ 등 공연 수요까지 더해지면서다. 2010년 2조8700억원이었던 말 산업 규모는 점차 늘어나 2016년엔 3조6173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승헌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부 교수는 “과거 고소득층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승마가 조금씩 대중화되면서 말 산업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승마를 즐기는 데 드는 비용은 시간당 4만~10만원가량. 비교적 높은 가격임에도 경기 이천시에 있는 스티븐승마클럽은 하루에 80명인 예약 한도가 거의 매일 꽉 찬다. 이 승마장의 박윤경 대표는 “어린 학생부터 은퇴한 노인까지 승마를 즐기는 연령대가 다양하다”며 “골프나 스키를 즐기던 스포츠인들이 점차 승마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상만 농림축산식품부 축산정책과장은 “한국에서 승마가 ‘엘리트 체육’에서 ‘대중 스포츠’로 옮겨 가는 추세가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말을 활용한 공연도 하나둘씩 시작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1월 한국마사회가 준비한 말 갈라쇼다. 마장마술에 스토리를 입힌 일종의 ‘뮤지컬’인 이 공연은 2주 전에 티켓이 전석 매진됐다. 최귀철 마사회 말산업진흥처장은 “말 갈라쇼는 이미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선 뮤지컬이나 오페라처럼 고급 예술로 자리잡았다”며 “앞으로 순회공연을 통해 한국에도 장르예술 중 하나로 정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 3만달러 시대’ 스포츠

[커버 스토리-경마보다 승마] "골프 다음엔 승마"…'소득 3만弗 스포츠' 고삐 당긴다
말 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직 한국의 승마장 이용자 수는 연간 68만명으로 미국(460만명)이나 영국(500만명)은 물론 일본(135만명)보다도 적다. 전체 일자리 중 말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0.04%로 호주(0.97%) 영국(0.35%) 미국(0.15%)보다 낮다.

박진국 마사회 승마활성화팀장은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엔 골프가 대중화되고 3만달러 시대엔 승마가 대중화된다는 말이 있다”며 “실제로 일본에서도 골프 열풍이 가시자 동호회를 중심으로 승마 문화가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말과 연계한 농촌 체험관광이 활성화되면서 관광 수요도 늘어날 것이라고 박 팀장은 덧붙였다.

말 산업 활성화를 통해 농가소득 확보에도 길이 열릴 전망이다. 말 생산과 사육 등이 농가의 새로운 소득 창출원으로 부각되면서다. 강원 철원군 갈말읍에서 승용마를 키우는 대암목장의 라매화 대표는 “원래 젖소를 키우다가 자녀들에게 보다 가능성 있는 사업을 물려주고 싶어 승용마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재활승마’도 향후 발전 가능성이 크다. 말의 걸음걸이가 사람과 거의 비슷해 하지마비 장애인도 승마를 통해 실제 걷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영재 전주기전대 마사과 학과장은 “그동안 쓰지 않았던 근육을 사용하고, 자세와 평형감각, 좌우 균형감각을 익힐 수 있다”며 “새로운 치료 방식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료 낮추는 게 관건

문제는 아직 쉽게 승마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가 완벽하게 갖춰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국 승마장 366곳 중 58%는 실내마장을 갖추지 못했고, 34%는 원형마장도 없다. 마장 설치 법령이 까다로워 임시마장과 실외마장만 사용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정승헌 교수는 “승마 장비가 평균 63만원으로 비싼 데다 도심에서 승마장을 가려면 1시간 이상 차로 이동해야 하는 등 승마스포츠 진입장벽이 남아 있는 상태”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게 말 산업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대책들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은이/서기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