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8월부터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당 연간 1억원에도 못 미치는 예산 지원으로 사업이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29일 오전 한 응급환자가 이송되고 있는 모습.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정부는 지난 8월부터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병원당 연간 1억원에도 못 미치는 예산 지원으로 사업이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29일 오전 한 응급환자가 이송되고 있는 모습.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1. 덴마크는 2004년부터 코펜하겐대학병원을 찾은 자살 시도자들을 대상으로 방문상담, 문제해결, 치료유지 등으로 이뤄진 ‘사후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02년 34%였던 자살 시도자의 재시도율이 2004년 14%로 낮아지는 효과를 거뒀다. 2008년 브라질 인도 스리랑카 이란 중국에서는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자살 시도자 1867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대조 연구가 진행됐다. 두 연구군에서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일반적인 외상치료만 받은 945명 중 1년 내 다시 자살을 시도해 사망한 환자는 2.2%(18명)였으나 사후관리를 통해 꾸준히 치료를 받은 922명 중에선 두 명(0.2%)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 미혼모 A씨(20)는 지난 20일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하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A씨의 첫 자살 시도는 중학교 2학년 때다. 그해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됐고 어머니는 재혼하면서 A씨를 떠났다. 혼자 남겨진 A씨는 유리조각으로 손목을 긋는 일을 수차례 반복했다. 지난해 생활비를 벌려고 시작한 피자집 아르바이트는 A씨를 또 곤경에 빠트렸다. 유부남인 가게 주인의 아이를 가진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아이를 혼자 키우며 우울증에 시달리던 A씨는 10번째 응급실행 구급차를 탔다.

다양한 이유와 사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사람들의 자살 재시도를 막기 위해 정부가 지난 8월 시작한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이 겉돌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25개 병원을 지정해 자살 시도자들을 관리하고 있지만 병원당 연간 1억원에도 못 미치는 예산 지원 때문에 병원들은 전문자격증도 없는 인력 두 명

정도로 운영하고 있다. 2006년 자살 시도자 관리에 들어간 일본은 올해 3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복지부는 올해 48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서울대병원 전문인력 2명

복지부에 따르면 자살을 시도했다가 응급실을 찾는 환자는 연간 4만명에 이른다. 이 중 20%인 8000명이 자살을 재시도한다. 김민혁 연세대 의대 교수는 “사후관리 부실로 자살 시도자 중 약 40%가 10년 내 자살을 재시도하고 그중 7%가 생을 마감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복지부는 응급실에 실려온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난 8월 서울 경희대병원 등 전국 25개 병원을 선정해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 사업’을 시작했다. 자살 시도자 사례를 관리하는 전문인력을 병원에 상시로 두고 병원 의료진과 함께 꾸준히 치료·관리함으로써 자살 재시도를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정상 궤도에 오르기까지 손봐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지정 병원인 서울대병원은 전담 인력(사례관리사)을 두 명 채용했다. 이들은 2교대로 운영된다. 한 명이 오전 7시~오후 4시, 다른 한 명은 오후 2~9시까지 근무한다. 주5일제 근무라 주말과 야간에는 공백이 생긴다. 현재 전담 인력(간호사 사회복지사 응급구조사 등)은 25개 지정 병원에 병원당 두 명꼴인 51명이 채용됐다.

한국 48억원 vs 일본 3000여억원

부족한 예산도 사후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복지부의 올해 자살예방사업 예산은 48억원. 일본이 자살예방사업에 올해 3174억원을 쏟아붓는 것과 대조적이다. 복지부가 올해 8월부터 연말까지 5개월 동안 지원한 금액은 지정 병원당 5000만원. 이 예산은 관리사들의 인건비로 대부분 쓰이고 있다. 8월 이후 5개월간 5000만원이 지원된 정부 예산은 내년 8000만원으로 줄어든다. 사후관리 지정병원 관계자는 “8시간씩 3교대로 운영해야 24시간 근무가 가능한데 그러려면 최소 네 명이 필요하다”며 “현재로선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빠듯한 예산 탓에 정신보건요원 자격증이 없는 채용도 비일비재하다. 정택수 한국자살예방센터장은 “임상 경험이 없는 관리사들이 응급실로 실려오는 자살 시도자를 상대하는 시스템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 33.6명으로 국내 최고인 세종시에는 지정병원이 없다. 경남도 자격 요건을 갖춘 대형 병원이 없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양승조 민주당 의원(천안갑)은 “복지부 요건을 충족하는 의료기관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예방사업에서 배제하는 것은 해당 지역 주민을 복지 사각지대에 몰아넣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자살예방사업 컨트롤타워 부재
한국은 자살률이 인구 10만명당 33.3명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4명보다 세 배가량 많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8년째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자살예방사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지만 운영되는 관련 시설은 크게 모자란다. 복지부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전국 22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169개 시·군·구에 지역정신건강증진센터를 설치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부 지원 센터들이 민간 위탁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인력과 시설 등이 부족하다. ‘자살예방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19개 시·군·구다. 김용익 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국립중앙의료원 자료를 보면 9개월간 6차례나 자살을 시도하다 사망한 환자도 관찰되는데 이는 사실상 정부가 방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컨트롤타워 부재도 문제로 지적된다. 2011년 3월 자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책무와 예방정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자살 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추진체계 간 지속적인 협력을 위한 조치는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다. 정 센터장은 “교육부가 대구 자살 사고 이후 학생 정서 행동 특성검사에 올해에만 35억원을 투입했는데,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검사보다 자살 위험 학생들을 상담할 전담 인력”이라고 아쉬워했다.

이지훈/박상익/홍선표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