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아세안을 달리 봐야한다
한국인에게 동남아시아는 발리와 푸껫 같은 원초적 자연미와 조용하고 여유로운 쉼이 있는 아름다운 휴양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동남아의 중심인 아세안(ASEAN)이 요즘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아세안이 연 5%대의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며 ‘차세대 브릭스(BRICs)’로 급부상함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의 아세안 러시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아세안은 전 인구의 3분의 2 수준인 생산가능인구를 기반으로 한 젊고 풍부한 노동력과 상대적인 저임금으로 글로벌 기업의 생산기지로 각광받는다. 섬유, 신발 등 일부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 비해 상대적 경쟁력을 보유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또 연소득 5000달러가 넘는 6000여만명의 중산층과 1억6000여만명의 젊은이를 바탕으로 2015년 아세안경제공동체(AEC)가 출범하면 6억 인구와 2조달러의 거대한 단일시장이 형성된다.

주요 강대국은 이미 아세안의 밝은 미래를 예견하고 많은 준비를 해왔다. 40여년의 경협 기반을 바탕으로 아세안 주요국에서 맹주 자리를 노리는 일본을 비롯해 통 큰 투자와 넉넉한 지원, 현지 경제를 주무르는 화교를 등에 업고 ‘맏형’을 자처하는 중국, 오랜 군사·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지원으로 여전히 강력한 입김을 행사하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아세안에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신규 해외직접투자(FDI)에서 이미 중국의 투자액을 앞섰고, 연간 1300억달러가 넘는 교역액으로 한국의 ‘제2의 글로벌 시장’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현지에서의 대한민국은 그리 돋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최근 인도네시아·베트남·미얀마 등 주요 아세안 국가를 둘러본 필자의 아쉽지만 솔직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아세안의 작은 나라 라오스를 ‘메콩강가의 조용한 힐링 여행지’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은 중장기 국가전략의 일환으로 생활비까지 대주면서 각각 수백여명의 라오스 청년을 자국으로 불러들여 공부시키고 있으며 곳곳에 ‘도움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반면 한국은 어쩌다 방문한 인사들이 서너명의 학비 면제 유학생을 큰 인심 쓰듯이 초청하는 정도다.

아세안을 달리 대우해야 한다. 라오스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처럼 대통령의 국빈 방문 이후 다소 나아지고 활발해졌지만 정책당국도 ‘제2의 교역시장’인 아세안을 그 위상과 성장 가능성에 맞게 재인식해야 한다. 선진국에 집중돼 있는 인력, 재정투입 등 정책자원의 우선순위 역시 재조정해 보다 체계적이고 통 큰 아세안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또 다양성이 공존하는 아세안 권역으로의 진출을 위해 주도면밀한 사전연구와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워 단계적으로 추진해나가야 한다. 일본과 미국은 연소득 3000달러 이하의 개도국 최하위 소득층을 겨냥해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 자국기업을 찾아 국가별로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 막대한 공적원조(ODA) 프로젝트를 자국기업이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돈도 벌고 마음도 얻는, 수익성과 사회공헌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신흥시장 진출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음을 우리는 의미있게 새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동남아시아를 저품질 생산기지, 저임금 근로자 양산지로 낮추보던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한류의 물결’이 넘실대는 아세안에 ‘상호이해와 존중이라는 정겨운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우리는 거대강국의 각축장에서 흔들리고 있는 아세안 국민들에게 ‘속내를 터놓고 나눌 수 있는 가까운 이웃’으로 빠르게 자리잡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대한민국은 2020년 1억명의 중산층을 안은 풍요로운 아세안 시장에서 ‘작지만 강한 거인’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젊은 그대’ 아세안이 우리를 부른다.

안현호 <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