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의혹을 받고 있는 비밀조직 ‘RO(혁명조직)’ 구성원들이 통합진보당의 요직에 진출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RO와 통진당의 관계에 대해 그동안 추측은 많았으나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RO가 광우병 사태와 쌍용자동차 파업, 비정규직, 무상급식 등 사회적 이슈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RO 조직원 대부분은 통진당원”

21일 수원지법 형사12부(부장판사 김정운) 심리로 열린 이석기 통진당 의원 등에 대한 6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 사건의 최초 제보자 이모씨는 “통진당 사무총장이 RO 조직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2002~2003년 민족해방 계열(NL)이 민주노동당에 대거 들어와 당 대표나 후보자 선출 때 압도적으로 우위를 차지했다”고 말했다.

“RO와 통진당은 어떤 관계인가”라는 검찰 측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진술이다. 민주노동당은 통진당의 전신으로 당내 노선 다툼을 겪다가 진보신당과 통진당으로 분화했다.

이씨는 또 “RO 조직원 가운데 통진당원이 얼마나 되느냐”는 검찰 측 질문에 “공무원노동조합이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등 정당에 가입할 수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 빼고는 모두 다 통진당원”이라고 답했다. 검찰 측이 “RO가 북한과 연계돼 있느냐”고 묻자 이씨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RO가 조직원들에게 매달 3만~5만원씩 회비를 걷어온 사실도 공개했다. 이씨는 “RO에 가입한 뒤 매달 빠짐없이 냈다”며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모른다”고 답했다.
사회적 이슈에 조직적 ‘실천투쟁’

이씨는 “RO가 광우병 사태와 쌍용차 파업 등 사회적 이슈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지방선거 출마자를 결정하는 등의 역할도 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는 것을 ‘실천투쟁’이라고 부르면서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다는 것이다.

이씨에 따르면 RO는 이런 실천투쟁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사람 가운데 주체사상에 능통한 사람을 골라 조직원으로 선발했다. 먼저 운동권 ‘학모’(사상학습 모임)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이런 면모를 보이는 사람을 골라 ‘이끌’(중간관리 단계)에 가입시켰으며, 여기서 더 두각을 나타내 한 단계 더 올라가면 RO에 가입하게 된다. 이씨는 ‘우리의 수(首)가 누구인가’ ‘나의 주체성은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김일성’ ‘혁명가’라고 답하는 의식을 거쳐 2003년 RO에 가입했다.

이씨는 이 사건이 공개된 뒤 겪은 고충에 대해서도 토로했다. 그는 “처음 공개됐을 당시 많은 사람이 저와 집사람을 찾기 위해 아이들 학교, 집사람 직장, 제가 운영하던 가게 등을 뒤지고 다녔다”며 “인터넷에 저의 사진과 이름이 공개되는 등 ‘신상털기’도 당했다”고 말했다.

노름빚을 갚기 위해 국가정보원에 거액을 약속받고 제보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당구장을 운영하면서 주변 상인들과 카드놀이를 한 적은 있지만 빚을 지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만큼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씨는 “2009년에 집행유예 상태인 데다 당뇨도 있고 거느린 가족도 있던 나에게 한나라당사 점거농성을 지시하는 것을 보고 실망을 많이 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연평도 포격 사건 때 북한을 두둔하는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에게 (종북 세력의) 실체와 위험성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제보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의원이 RO의 총책인 것은 지난 5월 비밀회합에서 이 의원의 강연을 들었을 때 처음 알게 됐다고 말했다. RO가 점조직 형태로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하며 운영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수원=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