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주일 한국대사관 이사가 남긴 교훈
국가기록원이 최근 우리 정부가 1953년 전국적으로 조사해 집계한 일본 식민지 치하 피해자 명부를 공개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서류에는 3·1운동 피살자를 비롯해 관동대지진 피해자와 강제징용자들의 이름이 빼곡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내무부가 주도해 작성한 이들 자료는 1953년 열린 제2차 한·일 회담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 옮겨졌다. 당시엔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국교가 없던 시절이어서 주(駐)일본 한국대표부가 이 문서를 맡았다. 일제 피해자들의 삶만큼 이 문서의 팔자도 고달팠다. 주일대사관이 장소를 옮길 때마다 여러 차례 이삿짐 신세가 됐다.

지난 5월 주일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신청사 입주를 위해 다시 이삿짐을 꾸렸다. 그 과정에서 문서의 존재를 처음 발견했다. 주일대사관은 상세한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으로 문서를 보냈고, 드디어 공식적인 공개 절차를 밟게 된 것이다.

자칫 어둠에 묻힐 뻔했던 자료들이 제 모습을 찾게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밝힌 문서의 발견 경위는 아쉬움투성이다. 일단 문서를 작성했던 정부 부처나 보관했던 주일대사관이나 대사관 이전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문서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복잡한 이동 경로도 정확하지 않다. 그랬을 거라는 ‘추정’에 불과하다.

여론의 비난에 주일대사관은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문서를 직접 만들었던 정부 부처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문서를 만든 정부 부처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 않느냐는 하소연이다. 문서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만큼 1965년 6월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다룬 한·일 협정 당시 이 문서가 활용됐는지도 미지수다.

더구나 이번에 공개된 자료는 원본이 아닌 사본으로 알려졌다. 원본은 아직 실종 상태다. 그럼에도 어디에서도 허술한 국가기록물 관리에 대한 제대로 된 반성문은 보이지 않는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번 한번으로 족하다. 틈만 나면 “종군 위안부가 강제 연행됐다는 자료가 어디 있느냐”며 속을 긁어대던 일본 극우세력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안재석 도쿄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