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조작된 행복' 무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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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 '천국으로 가는 길'
“히-멜-베크(himmelweg)라고 발음합니다. 한 단어가 아닙니다. 두 단어예요. 히멜은 천국, 베크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히멜베크는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이죠. 바로 여기서 처음으로 이 표현을 들었습니다. 전쟁 중에.”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인 연극 ‘천국으로 가는 길’은 ‘히멜베크’를 방문했던 한 적십자 대표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독일어인 ‘히멜베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이동한 길을 말한다. 그 길은 천국, 즉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적십자 대표는 ‘수상한 소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찾은 유대인 민간인 수용소에서 더없이 평화로운 저녁 마을 풍경을 본다. 광장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곡을 연주하고 아이들이 팽이를 가지고 논다. 벤치에서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강가에선 한 소녀가 인형에 수영을 가르친다. 노인은 한가로이 신문을 읽고, 풍선 장수가 이리저리 거닌다. 적십자 대표는 뭔가 이상하고 인위적인 것처럼 느끼지만 보이는 대로 보고서를 써낸다. 그가 본 광경은 모두 연극이었다.
이 작품은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다. 참상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나 서술은 없다. 나치의 대외 선전용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성과 철학이 발달한 문명국가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이성적인 참사를 자행하는 현장에서 교양 있는 독일 사령관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피노자를 논한다. 플롯, 말, 제스처의 정교함과 극적 완성도를 광적으로 추구한다. 유대인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벌벌 떨며 사령관의 기괴한 연극 놀이에 참여한다.
극은 이성과 문명의 야만성, 나약하면서도 잔인한 인간의 부조리함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또 우리가 보고 듣는 사실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묻는다. 극 중 ‘유대인 협력 연출가’인 고트프리트는 연기 경험이 없어 힘들어 하는 배우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내 첫 번째 상사, 바우만 씨가 생각나. 내 삶을 참 힘들게 했지. 하지만 난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척했어. ‘다리는 어떠십니까’ 하면서 미소를 지었지. 모든 사람이 때때로 연기를 해,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스페인 작가 후안 마요르가가 2002년에 쓴 희곡을 김동현 연출가가 국내 처음으로 무대화했다. 지적이고 세련된 구성과 연출을 보여주는 무대다. 깊이 있는 예술적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백익남(사령관) 오대석(고트프리트) 강명주(적십자 대표) 등이 좋은 연기를 펼친다. 오는 24일까지, 2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 중인 연극 ‘천국으로 가는 길’은 ‘히멜베크’를 방문했던 한 적십자 대표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독일어인 ‘히멜베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수용소에서 가스실로 이동한 길을 말한다. 그 길은 천국, 즉 죽음으로 가는 길이다.
적십자 대표는 ‘수상한 소문’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찾은 유대인 민간인 수용소에서 더없이 평화로운 저녁 마을 풍경을 본다. 광장에서는 오케스트라가 곡을 연주하고 아이들이 팽이를 가지고 논다. 벤치에서는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강가에선 한 소녀가 인형에 수영을 가르친다. 노인은 한가로이 신문을 읽고, 풍선 장수가 이리저리 거닌다. 적십자 대표는 뭔가 이상하고 인위적인 것처럼 느끼지만 보이는 대로 보고서를 써낸다. 그가 본 광경은 모두 연극이었다.
이 작품은 유대인 대학살을 다룬다. 참상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나 서술은 없다. 나치의 대외 선전용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성과 철학이 발달한 문명국가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이성적인 참사를 자행하는 현장에서 교양 있는 독일 사령관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피노자를 논한다. 플롯, 말, 제스처의 정교함과 극적 완성도를 광적으로 추구한다. 유대인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벌벌 떨며 사령관의 기괴한 연극 놀이에 참여한다.
극은 이성과 문명의 야만성, 나약하면서도 잔인한 인간의 부조리함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또 우리가 보고 듣는 사실이 얼마나 진실된 것인지 묻는다. 극 중 ‘유대인 협력 연출가’인 고트프리트는 연기 경험이 없어 힘들어 하는 배우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내 첫 번째 상사, 바우만 씨가 생각나. 내 삶을 참 힘들게 했지. 하지만 난 그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척했어. ‘다리는 어떠십니까’ 하면서 미소를 지었지. 모든 사람이 때때로 연기를 해,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스페인 작가 후안 마요르가가 2002년에 쓴 희곡을 김동현 연출가가 국내 처음으로 무대화했다. 지적이고 세련된 구성과 연출을 보여주는 무대다. 깊이 있는 예술적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백익남(사령관) 오대석(고트프리트) 강명주(적십자 대표) 등이 좋은 연기를 펼친다. 오는 24일까지, 2만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