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하느니만 못한 투자설명회(IR)다." "구체적인 정보를 내놓을 순 없느냐."

국내 유가증권 시장에서 시총 비중 20%를 차지하는 삼성전자가 IR을 하고 난 뒤 으레 나오던 시장의 불만이었다. 대부분의 질문에 "말할 수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해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모르쇠 IR'이란 지적도 나왔다.

그런 삼성전자가 2005년 이후 8년 만에 투자자·애널리스트 400여명을 모아놓고 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대규모 '애널리스트 데이'를 열었다. 시장에서 제기된 성장 정체 우려를 불식시키고 중장기 사업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이상훈 경영지원실장(사장), 신종균 IT&모바일(IM) 부문 사장, 윤부근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 등 수뇌부가 총출동했다. 전동수 메모리반도체 사장과 우남성 시스템LSI 사장, 김기남 삼성디스플레이 사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행사에 나온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의 3년, 5년 뒤 사업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을지 기대했다. 본격적인 발표 시작 1시간 전부터 행사장을 찾은 애널리스트들도 상당수였다.

권 부회장은 "지속적인 성장과 생태계 구축, 사업 확장을 통해 오는 2020년 전까지 매출 4000억 달러(440조 원)를 달성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다음 10년의 키워드를 찾아야 한다" 며 "앞으로 삼성전자 IT 기술을 자동차·의료기기에 접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래 사업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이 사장은 미래사업을 육성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인수합병(M&A)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완제품 부문에서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부문에, 부품 부문에선 기술적 우위를 가진 기업에 초점을 맞춰 M&A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사장은 "휴대폰 이어 태블릿PC에서도 세계 1위를 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윤 사장은 "TV는 8년 연속 1위, 생활가전은 2015년까지 선두에 오르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전 사장은 "세계 최초로 LPDDR4를 준비할 것"이라고, 우 사장은 "AP와 모뎀칩을 통합칩을 개발해 곧 제품에 탑재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사업부문별 사장들의 발표가 끝난 뒤 애널리스트들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지난 IR과 마찬가지로 이렇다할 설명이나 구체적 내용이 나온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애널리스트들이 꼽은 가장 큰 소식은 삼성전자가 올해 주주 배당을 평균 주가의 1% 선에서 할 것이라고 밝힌 정도였다.

실명을 밝히기 꺼려한 한 연구원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며 "안오자니 찜찜해 왔지만 별게 없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다만 "삼성전자가 자동차와 의료기기를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만큼 앞으로 변화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연구원은 "기존에 나온 제품, 기술 얘기가 대부분이었다"고 지적했다.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애널리스트도 없지 않았다. 권성률 동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이런 행사를 열었다는 것 자체를 의미있게 받아들인다" 며 "매출액 4000억 달러 달성을 제시한 것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폴 노 JP모건 자산운용 연구원은 "좋은 행사였다"며 "투자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 내용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2.29% 하락한 145만1000원에 장을 마쳤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