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소설가 구소은 씨(49·사진)의 《검은모래》(은행나무)는 소설의 이런 가치를 충분히 담고 있는 장편이다. 4·3사건보다는 일제강점기와 태평양전쟁, 6·25전쟁 등 현대 세계사의 격랑에 휘말린 제주 출신 해녀 가족의 4대에 걸친 역사를 감동적으로 담았다. 제주와 일본의 바다와 뭍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 스케일은 크고 깊다.
작가의 첫 작품인 이 소설은 제주 우도 출신 해녀 구월과 딸 해금, 해금의 아들 건일, 건일의 아들 미유로 이어지는 가족사를 중심으로 한다. 구월은 1929년 작은 어선 두 척을 가진 박상지와 결혼하지만 심지가 굳은 박상지는 어선을 처분해 제주도민의 자주적 해운회사인 동아통항조합에 투자한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조합이 망하자 이들 가족은 팍팍한 삶을 타개하려 종종 ‘출가물질’을 나가던 일본 화산섬 미야케시마로 이주한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던 이들은 태평양전쟁과 6·25전쟁, 해방 후 이어진 일본의 재일조선인 북조선 송환 정책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맞는다. 역사와 바다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간 한국인의 눈물겨운 삶을 통해 독자들은 잊고 살던 민족의 ‘뿌리’를 새삼 느끼게 된다.
4일 제주 우도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작가는 “현대의 모든 이야기의 뿌리는 역사로부터 거슬러 올라온다”며 “내가 이 소설을 쓰면서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된 것처럼 독자들도 이 작품을 읽으며 함께 역사를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5년간 이 소설을 준비하며 작가는 국내 자료뿐 아니라 독학한 일본어로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등 일본 자료도 찾아냈다. 이들 신문에서 해방 후 일본 조총련 계열 재일동포를 북으로 보냈던 ‘북송선’에 대한 기사 등을 읽고 소설에 녹여냈다. 5년간의 취재를 통해 얻은 꼼꼼한 자료와 생생한 인물 묘사가 소설에 생명력을 더했다. 심장병으로 올해 두 차례 수술을 받은 작가는 첫 작품부터 깊은 울림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제주=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