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명동·후암동 입구는 '흡연자의 메카'…여의도선 '식후땡'족 원정 흡연도
“남편이 쓰레기 버린다고 나가면 30분이 지나도 안 들어와요. 한참 후에 돌아오면 온몸에서 담배 냄새가 진동하고요.”

두 아이의 엄마인 박모씨(38)는 최근 남편의 흡연 문제로 고민이 많다. 마흔을 넘기면서 남편 체력이 예전같지 않아 금연을 권하고 있는데, 겉으로는 “알았다”고 하면서도 좀처럼 담배 끊을 생각을 하지 않아서다. 남편인 서모씨도 할 말은 있다. 술도 안 마시고 늘 일찍 귀가해 회사에선 애처가로 불리는데 흡연 정도는 봐줄 수 있는 일 아니냐는 것이다.

흡연자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정부 정책으로 금연구역이 넓어지고 있는 데다 직장에서도 흡연자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고, 흡연공간을 폐쇄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일부터 1주일간 전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150㎡ 이상 식당, 주점, 찻집, PC방 등에 대해 지방자치단체 등과 합동 단속에 들어갔다. 식당 내 구석자리에서 종이컵을 재떨이 삼아 몰래 담배를 피우는 것도 힘들어졌다.

○피울 곳 찾아다니는 ‘흡연 노마드족’


흡연 공간이 갈수록 줄어들자 사무실이 몰려 있는 시내 중심가엔 ‘흡연 메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에선 대표적인 장소가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뒤편에 있는 분수대 주변이다. 점심시간만 되면 인근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몰려든다. 식당이 밀집한 명동 초입에 있어 식사하고 담배 한 대를 피우는 일명 ‘식후땡’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점심 때면 매일 수백명이 삼삼오오 몰려 담배를 피운다.

남산으로 올라가는 서울 후암동 입구도 얼마 남지 않은 흡연 공간이다. STX 본사와 CJ 등 대기업들이 몰려 있어 이곳에서도 점심시간만 되면 공장 굴뚝처럼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온다.

그나마 회사 주변에 흡연 공간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서울 여의도 D증권의 양 대리는 회사의 금연정책 때문에 회사 건물 주변에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자 몇 달 전부터 두 블록 건너편의 다른 증권사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마저도 불가능하게 됐다. 양 대리를 따라 다른 직원들도 한두 명씩 담배를 피우러 오면서 인원 수가 급격히 불어난 게 화근이었다. 다른 회사 직원들까지 와서 담배를 피워대니 경비실로 항의 민원이 쏟아졌고 결국 이 증권사 주변에도 ‘금연’ 문구가 붙게 됐다.

○‘가치담배’ 한 갑 살 때보다 돈 더 들어

강력한 금연정책을 펴는 회사가 많아지면서 이색 광경이 펼쳐지는 곳도 있다. 경기 수원시 매탄동 삼성 디지털시티에서는 ‘흡연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작업장 내 ‘안전’을 강조하며 전면 금연을 선언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려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문제는 디지털시티가 165만㎡(약 50만평)에 이를 정도로 넓어서 밖에 나갔다 오려면 최소 30분가량 걸린다는 것. 게다가 출입할 때 신분증을 찍어야 하는데, 하루에 세 번 이상 신고된 업무 없이 출입할 경우 부서장에게 통보된다. 사실상 담배 피우는 게 봉쇄된 셈이다.

최근에는 디지털시티 내로 담배 반입 자체가 금지되면서 주변 편의점에는 비싼 ‘가치담배(갑에 넣지 않고 낱개로 파는 담배)’ 판매가 성업 중이다. 하루에 서너 개비를 사서 피우다 보면 한 갑 피우는 것보다 돈이 더 든다고 흡연자들은 하소연한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근무 시간에 담탐(담배타임)이 없어진 것도 서러운데 담뱃값마저 더 나가다 보니 서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한 개비만”…늘어나는 ‘민폐족’

금연을 시도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주변 사람들도 쉽진 않다. 국민은행의 5년차 김 대리는 ‘말로만’ 금연 중인 이 부장이 얄밉기만 하다. 하루에 한 갑은 기본으로 피우던 ‘골초’ 이 부장은 어느 날 저녁 회식자리에서 가지고 있던 담배를 모두 나눠주며 앞으로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사흘간 담배를 참던 이 부장은 결국 “도저히 안되겠다. 냄새만 맡아볼게”하며 한 대를 얻어 피웠다. 또 며칠 뒤 “미안한데 담배 한 개비만 더 얻어 피우자”며 담배를 빌려갔다. 담배 동냥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끊기는커녕 얻어가는 주기만 점점 짧아졌다.

“처음엔 미안한 척이라도 하더니 이제는 아예 대놓고 눈앞에서 담배를 꺼내 가더라고요. 맡겨둔 담배를 가져가는 것처럼 말이죠. 한 갑 사주든가,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이든가 해야지.” 김 대리는 요즘 일부러 가방 등에 담배를 숨겨놓고 한 개비만 갖고 다닌다.

자신은 피우지 않으면서 부하 직원들에게 “뿜어보라”고 시키는 ‘밉상’ 상사도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 과장은 상사인 정 부장 때문에 끊으려던 담배를 더 피우게 됐다. 회식 때마다 정 부장이 “담배를 끊었는데 냄새가 그립다. 박 과장이 담배 연기 한 번 뿜어보라”고 시켜서다.

○고무장갑·나무젓가락…흔적을 지워라

KT 계열사에 다니는 골드미스 김 대리는 흡연자이지만 손에서 나는 담배 냄새는 정작 자신도 싫어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고무장갑이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담배를 들고 피우면 손에 냄새가 배는 일을 막을 수 있어서다. 긴 고무장갑을 손목까지만 오게 잘라서 담배를 피울 때마다 활용한다. 처음엔 목장갑을 썼는데 고무장갑이 냄새 차단에 훨씬 효과적이었다. 내친 김에 고무장갑을 넣고 다닐 수 있는 예쁜 파우치도 마련했다. 파우치는 원래 여성들의 휴대용 화장품 가방으로 사용되지만 김 대리는 화장품용 파우치와 고무장갑용 파우치 두 개를 들고 다닌다.

지난 9월 결혼한 같은 회사의 장 과장은 나무젓가락을 애용한다. 결혼 전에 금연하겠다고 아내에게 맹세한 그는 밖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집에 들어갔다가 손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들킨 적이 있다. 이후로는 나무젓가락으로 담배를 집어들고 흡연하는 게 버릇이 됐다. 문제는 가끔씩 남편의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되는 나무젓가락 정체에 대해 아내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의 아내는 지금도 남편이 술에 취해 젓가락을 주머니에 넣어 오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장 과장은 “흡연에 대한 의심은 피했지만 혹시 숨기고 있는 주사(나쁜 술버릇)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눈초리가 예사롭지 않다”고 씁쓸해했다.

박신영/전예진/황정수/박한신/임현우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