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프랑스 연합군과 오스트리아 간의 솔페리노 전투. 4만구의 시신이 뒹구는 전장을 목격한 31세의 젊은 사업가 앙리 뒤낭은 충격에 휩싸였다. 제분회사 경영은 제쳐두고 부상자 구호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는 세계적인 구호단체 국제적십자사 탄생의 시작이었다.
뒤낭은 1828년 스위스 제네바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고아원을 운영하던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봉사활동에 적극적이었다. 그가 16세 때 만든 빈민구호단체는 1852년 기독교청년회 YMCA로 발전했다.
뒤낭은 25세 때 은행에 입사해 프랑스령인 아프리카 알제리로 건너갔다. 사업에 눈을 뜬 뒤낭은 제분회사를 차렸으나 자금난에 봉착했다. 나폴레옹 3세를 만나 협조를 구하고자 전쟁이 한창이던 솔페리노로 갔다. 그러나 처참한 전장을 맞닥뜨린 뒤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다. 전장 구호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3년 뒤에 쓴 ‘솔페리노의 회상’에서 전시 부상자를 위한 중립적 국제기구 창설을 주창했다. 유럽 각국의 호응을 얻어 1863년 국제적십자가 창립됐다.
개인사는 불행했다. 적십자 창립 후 파벌싸움에 밀려 총재직에서 밀려났고, 사업은 돌보지 않아 빈털터리가 됐다. 1901년 세계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제1회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1892년 알프스 산골 하이든의 양로원으로 들어가 초라한 말년을 보내다 1910년 10월30일 눈을 감았다. 82세였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