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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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책장을 넘기다 우연히 발견한 낙엽. 아직도 붉은 기운이 선명한 그 낙엽은 중학시절 한 친구가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건네준 것이었다. 하얀 물감으로 써내려간 한 편의 시가 낙엽의 처연함을 더해준다. 자크 프레베르의 시 ‘고엽(Les feuilles mortes)’이었다.

오, 나는 그대가 기억하길 간절히 바래요 / 우리의 행복했던 나날들을 / 그때는 삶이 더욱 아름다웠고 / 태양은 오늘보다 더 빛을 발했죠 …낙엽이 무수히 나뒹구네요 / 추억과 미련도 마찬가지로 / 북풍은 그것들을 휘몰아 어디론가 데려가지요/ 싸늘한 망각의 밤에…

봄부터 겨울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한 잎 낙엽은 지나간 세월과 추억을 상기시킨다. 그에 대한 아쉬움은 누런 잎이 나무에서 떨어져 나오면서 한층 깊어간다. 잔인하게도 북풍은 그런 낙엽마저도 그와 함께했던 나무와 영원히 갈라놓는다. 그렇지만 낙엽은 추억과 슬픔의 심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부활을 기약하는 징표다. 내년에 그것은 푸른 잎새에 또 다른 세월과 추억을 쌓아갈 테니까. 그래서 낙엽은 슬픔이자 희망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