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마을 개발방식 갈등] 서울시 갑작스런 '환지' 결정…승인권 쥔 강남구 6개월 지나 반발
지난 18일 서울시 신청사 3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새누리당 의원들과 박원순 시장이 구룡마을 개발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서울시가 개발이익을 사유화하는 환지 방식으로 구룡마을을 개발키로 결정해 투기세력에 특혜를 주려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했다”며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서울시 차원에서 감사원에 감사를 직접 청구하겠다”고 맞받았다.

서울지역 최대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 쟁점으로 비화하고 있다. 구룡마을은 그동안 개발 방식을 놓고 서울시와 강남구 및 토지주 간 갈등 때문에 미뤄지다 2011년 4월 시의 발표로 공영개발이 확정됐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토지주에게 보상금 대신 땅으로 지급하는 일부 환지방식을 추가하면서 촉발된 서울시와 관할 구청인 강남구 간 갈등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구룡마을 갈등에는 면밀한 검토 없이 환지방식을 도입한 서울시의 ‘안이한 행정’과 환지방식 개념도 몰랐던 강남구의 ‘무능한 행정’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갑작스러운’ 환지방식 도입 결정

[구룡마을 개발방식 갈등] 서울시 갑작스런 '환지' 결정…승인권 쥔 강남구 6개월 지나 반발
구룡마을을 둘러싼 갈등은 1년5개월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가 환지방식 도입을 처음으로 공식 요구한 것은 지난해 5월2일 열린 시 도계위였다. 당시 회의록에 따르면 시 간부들은 환지방식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일부 위원들의 반발로 보류됐다. 환지 관련 지식이 없어 심의가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시는 강병근 건국대 건축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소위원회를 구성, 구룡마을 답사 등을 통해 6월20일 열린 도계위에서 환지방식 도입을 최종 결정했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시 관계자는 “작년 4월1일부터 혼용방식을 새로 반영한 도시개발법 시행령이 개정돼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었다”며 “답사 결과 환지 도입에 찬성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시의 이 같은 결정은 서울시 주택정책실 간부로 당시 담당 과장이던 K국장이 주도했다. K국장은 2011년까지 강남구청에서 도시계획국장을 지내며 민영개발을 주장했다. 강남구는 전임 맹정주 구청장 시절 구룡마을 공영개발 대신 민영개발을 강력히 요구한 바 있다. 시 고위 관계자는 “민영개발을 주장했던 K국장이 구룡마을 개발을 책임지는 시 담당자로 부임하는 것에 대해 당시 문승국 행정2부시장에게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일부 환지 도입에 따라 불거질 수 있는 특혜 의혹 및 토지주 이익 등에 대해 도계위서 제대로 논의하지 않은 채 서울시가 성급하게 결정했다는 점이다. 시 관계자는 “도시개발법 시행령 개정 이후 일부 환지를 도입하는 혼용방식이 법제화된 뒤 처음 시행되는 경우였는데 성급하게 결정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환지도입 통보에도 “몰랐다”는 강남구

강남구는 서울시가 구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환지 도입을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도계위 결정 후 강남구에 어떤 통보도 없었다는 게 구의 주장이다. 구룡마을 개발은 서울시 산하 SH공사가 시행하지만 환지계획 최종 승인 권한은 강남구에 있다.

강남구 주택과는 그러나 지난해 7월19일 구룡마을 구역지정을 고시했고, 다음달인 8월6일 ‘일부 환지방식을 도입한 혼용방식으로 개발한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에 대해 구 관계자는 “서울시와 관련 협의를 진행한 구청 주택과 간부들이 행정직 공무원이라 환지방식 도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몰랐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강남구청이 환지방식 도입 배경 등을 질의하는 공문을 작년 12월에야 서울시에 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 측은 이를 토대로 “서울시가 강남구에 환지방식 도입 통보나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구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남구에 따르면 구룡마을 땅주인 109명 중 990㎡(약 300평) 이상의 보유자는 44명이다. 3300㎡(약 1000평)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도 5명이다. 인근 개포주공 1, 2단지 땅값이 3.3㎡당 4000만원임을 감안하면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환지받은 토지주는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강남구 주장이다. 구 관계자는 “당초 구룡마을 민영개발을 주장했던 K국장이 토지주들에게 특혜를 주는 환지방식 도입을 주도했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유착 관계를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K국장은 “적법절차를 거쳐 시행했다”며 강력 부인했다.

◆강남구청, 정치적 노림수 있나

구룡마을을 둘러싼 강남구와 서울시의 갈등 배경에 신 구청장의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 관계자는 “강남구는 새누리당의 전략공천 지역이라 현직은 재공천이 힘들다”며 “박원순 저격수를 자청해 재공천받으려는 의도가 짙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 구청장은 “서울시의 더러운 술수”라고 반박했다. 이번 국감에서 구룡마을이 정치 쟁점화하면서 신 구청장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됐다는 관측이 많다.

서울시는 일부 환지방식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 계획대로라면 토지주들은 전체 용지 28만㎡의 18%인 5만여㎡를 이용해 민영개발을 하고, 나머지 82%는 SH공사가 땅을 직접 사들여 개발하게 된다. 수용방식을 적용하면 SH공사가 8000여억원을 투입해야 하지만 환지방식을 섞으면 4000억원을 줄일 수 있다. 환지방식에 찬성하는 토지주들의 협조를 얻으면 예정대로 2016년까지 구룡마을 개발을 마칠 수 있다는 점도 시가 환지방식을 원하는 이유다.

■ 환지(換地) 방식

도시개발사업 때 수용한 땅의 소유주에게 보상금 대신 개발구역 내에 조성된 다른 땅을 주는 방식. 도시개발법상 공공시설의 설치 및 변경이 필요하거나 개발지역 땅값이 인근보다 비싸 보상금을 주기 어려울 때 사용할 수 있다. 보상금만 지급하면 수용방식, 환지와 수용방식을 섞으면 혼용방식이라고 부른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