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EU 집행위원의 연설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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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경쟁 정책은 미국과 달라
더 엄격한 시장개입·제재수위 감안
회원국 반독점법까지 파악해야"
이호선 < 국민대 법학 교수·유럽연합대학원 객원교수 hosunlee@kookmin.ac.kr >
더 엄격한 시장개입·제재수위 감안
회원국 반독점법까지 파악해야"
이호선 < 국민대 법학 교수·유럽연합대학원 객원교수 hosunlee@kookmin.ac.kr >
지난달 27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이자 경쟁국을 담당하는 호아킨 알무니아 집행위원이 미국 포담대학 경쟁법센터의 연례 콘퍼런스에서 EU 집행위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규제의 특징과 방향을 놓고 연설했다. 그의 연설문은 EU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규제 법리에 대한 강의식 설명이었으며, 미국의 반독점법 체제와의 차이를 하나씩 들추며 은근히 글로벌 경제질서의 감독자로서 질책과 훈계를 하는 인상까지 묻어났다.
국내 일부 언론은 그 내용 중 삼성전자가 현재 EU 집행위에서 조사 중인 표준필수특허권 남용 사건과 관련해 서약안을 제출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으나, 정작 삼성전자 건(件)은 러시아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등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나온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알무니아 위원이 앞으로 EU의 경쟁정책에 대해 대강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그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3월 MS사에 대해 한국 공정거래법상으로는 동의명령에 해당하는, 이른바 서약승인결정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억61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을 예로 들면서 첨단 디지털 분야에 반독점법의 기본이 수정 적용되거나 완화돼야 한다는 일부 주장을 난센스로 치부하는 듯한 그의 말에서는 글로벌 경쟁법 규범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단호함마저 느껴진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유럽시장에서는 미국시장에서와는 다른 경쟁법적 지식을 갖추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반독점 법리와 EU의 규제 방침의 차이는, 우선 미국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탈취적 남용행위에 대해 EU 경쟁당국은 개입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불공정하거나 과도한 가격 책정을 하게 되면 EU 반독점법의 제재 대상이 된다. 비용 대비 가격이 지나치게 높고, 그 높은 가격이 해당 지배적 사업자의 혁신과 효율성의 결과가 아니라면 지배적 사업자는 자신이 책정하는 시장가격에도 메스가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거래 거절의 경우에도 미국에서는 이를 규제하게 되면 경쟁사업자들에게 무임승차의 기회를 줘 시장에서 혁신 동기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 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지만, EU는 그렇지 않다. ‘이윤압착’도 EU에서는 남용 행위의 독자적인 한 유형으로 인정된다. 미국에서 약탈적 가격 책정 행위의 요건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것과 대비된다.
이런 차이는 미국 시장에서는 문제없는 거래 관행이 EU 시장에서는 거액의 과징금 부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의 경우엔 카르텔이나 합병사건과 달리 EU의 반독점법뿐만 아니라 각 회원국의 자체적인 반독점법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 때 적용되는 회원국의 국내법은 그 요건이나 제재 수위가 EU 반독점법의 그것보다 높아야 한다. EU 경쟁법규 적용의 통일성담보원칙에 대한 예외인 셈이다. 실제로 몇몇 회원국들이 EU 수준의 규제보다 높은 반독점법을 시행하고 있고, EU 반독점법상의 규제 대상이 아닌 불공정한 거래나 기망적 상행위에 대한 제재가 포함돼 있기도 하다. EU 반독점법만 피하려다가 회원국의 보다 엄격한 경쟁법이라는 지뢰를 밟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들이 EU 집행위나 회원국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거액의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시장지배적 남용 행위에 관한 주요 몇 개 국가들의 규제 정도는 파악해 놓을 필요가 있다. 알무니아 위원의 포담대학 연설은 어찌보면 우리 기업들에 대한 사전 경고일 수도 있다.
이호선 < 국민대 법학 교수·유럽연합대학원 객원교수 hosunlee@kookmin.ac.kr >
국내 일부 언론은 그 내용 중 삼성전자가 현재 EU 집행위에서 조사 중인 표준필수특허권 남용 사건과 관련해 서약안을 제출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으나, 정작 삼성전자 건(件)은 러시아 에너지 기업인 가즈프롬,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 등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나온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는 알무니아 위원이 앞으로 EU의 경쟁정책에 대해 대강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 더 주목해야 한다. 그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3월 MS사에 대해 한국 공정거래법상으로는 동의명령에 해당하는, 이른바 서약승인결정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5억61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한 사건을 예로 들면서 첨단 디지털 분야에 반독점법의 기본이 수정 적용되거나 완화돼야 한다는 일부 주장을 난센스로 치부하는 듯한 그의 말에서는 글로벌 경쟁법 규범의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단호함마저 느껴진다.
이는 우리 기업들이 유럽시장에서는 미국시장에서와는 다른 경쟁법적 지식을 갖추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반독점 법리와 EU의 규제 방침의 차이는, 우선 미국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 탈취적 남용행위에 대해 EU 경쟁당국은 개입에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불공정하거나 과도한 가격 책정을 하게 되면 EU 반독점법의 제재 대상이 된다. 비용 대비 가격이 지나치게 높고, 그 높은 가격이 해당 지배적 사업자의 혁신과 효율성의 결과가 아니라면 지배적 사업자는 자신이 책정하는 시장가격에도 메스가 가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거래 거절의 경우에도 미국에서는 이를 규제하게 되면 경쟁사업자들에게 무임승차의 기회를 줘 시장에서 혁신 동기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 당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지만, EU는 그렇지 않다. ‘이윤압착’도 EU에서는 남용 행위의 독자적인 한 유형으로 인정된다. 미국에서 약탈적 가격 책정 행위의 요건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것과 대비된다.
이런 차이는 미국 시장에서는 문제없는 거래 관행이 EU 시장에서는 거액의 과징금 부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의 경우엔 카르텔이나 합병사건과 달리 EU의 반독점법뿐만 아니라 각 회원국의 자체적인 반독점법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 때 적용되는 회원국의 국내법은 그 요건이나 제재 수위가 EU 반독점법의 그것보다 높아야 한다. EU 경쟁법규 적용의 통일성담보원칙에 대한 예외인 셈이다. 실제로 몇몇 회원국들이 EU 수준의 규제보다 높은 반독점법을 시행하고 있고, EU 반독점법상의 규제 대상이 아닌 불공정한 거래나 기망적 상행위에 대한 제재가 포함돼 있기도 하다. EU 반독점법만 피하려다가 회원국의 보다 엄격한 경쟁법이라는 지뢰를 밟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시장점유율이 높은 기업들이 EU 집행위나 회원국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거액의 과징금을 피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시장지배적 남용 행위에 관한 주요 몇 개 국가들의 규제 정도는 파악해 놓을 필요가 있다. 알무니아 위원의 포담대학 연설은 어찌보면 우리 기업들에 대한 사전 경고일 수도 있다.
이호선 < 국민대 법학 교수·유럽연합대학원 객원교수 hosunlee@kookmin.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