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실패 경영인 안돼"
동양그룹 법정관리를 관할하는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는 11일 동양그룹 경영진과 대표 채권자(산업은행),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을 갖고 있는 개인투자자 모임인 ‘동양그룹 채권자 비상대책위원회’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동양그룹은 ‘현 경영진이 기업을 살려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양그룹은 김철 동양네트웍스 대표이사, 김종오 동양시멘트 대표이사, 박철원 (주)동양 건설·플랜트 대표 등을 각 회사의 법정관리인으로 신청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현 경영진을 관리인으로 임명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통합도산법)의 DIP 제도를 이용하겠다는 뜻이다.
반면 채권단과 비대위 측은 “이미 실패한 경영진이 법정관리인이 돼서는 안 된다”며 공정한 인물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약 1만명의 회원(채권액 약 3000억원)을 모집한 비대위 측은 △현 경영진을 관리인에서 제외할 것 △비대위 대표를 채권자협의회 구성원으로 참여시켜 줄 것 △비대위가 추천하는 인물을 구조조정 임원(CRO)이나 감사로 선임할 것 △소액채권자들을 모아 사단법인을 구성할 테니 충분한 대응 시간을 줄 것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 요구에 대한 법원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법원 관계자는 이날 간담회에서 ‘판사는 법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법을 지키는 사람’이라며 ‘이미 DIP 제도가 잘 돼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과 개인투자자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비대위 커뮤니티에는 ‘투자자 돈을 갚지 않으려 법정관리를 신청했는데 경영진 뜻대로 되는 것 아니냐’ ‘투자자 모아서 돈을 빼돌린 다음 법정관리를 신청해 경영권을 지키고 부채도 탕감받는 것’이라는 비판의 글이 속속 올라오는 중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량 회사가 갑자기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감자나 출자전환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법정관리를 빨리 졸업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채권자들은 이자율 감면, 만기 연장 등으로 손실을 입는 반면 경영진은 별다른 손해 없이 회사를 정상화시킬 수 있어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채권단과 비대위는 현 경영진이 관리인으로 선임될 경우에 대비해 CRO를 추천하기 위한 후보자 물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한편 동양증권 노조는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을 기각해 달라는 탄원서를 이날 법원에 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