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특허괴물'에 칼 빼든 공정위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에 과도한 특허료를 요구하는 ‘특허 괴물(특허관리 전문회사)’을 규제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현재 국내에는 50여개 외국계 특허 괴물이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5년여간 특허 괴물에 제소당한 한국 기업만 500곳이 넘는다.

공정위는 10일 이학영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업무자료에서 과도한 특허 사용료 지급 요구를 ‘지식재산권 남용’ 행위로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상섭 공정위 시장감시총괄과장은 “부동산 시장에서의 알박기처럼 특허를 매입한 뒤 기업에 과도한 특허 사용료를 요구하는 ‘특허 알박기’는 문제가 있다”며 “특허청 등 관계 부처와 함께 규제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미 지난달 이에 대한 외부용역을 마쳤다.

실제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은 특허 괴물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2008년 1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국내 기업이 특허 괴물에 제소당한 건수는 총 556건. 이 중 대기업이 464건, 중소기업이 92건이다. 기업별로는 삼성전자가 가장 많이 시달렸다. 외국계 특허 괴물인 인터디지털로부터 지난 1월 휴대폰 특허 소송을 당하는 등 모두 223건의 특허소송에 휘말렸다. 이어 LG전자(141건), 팬택(59건), 현대자동차(46건), 기아자동차(24건), SK하이닉스(11건) 등의 순이었다. 휴대폰 자동차 반도체 등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강한 분야가 많은 게 특징이다.

한국 기업을 제소한 특허 괴물은 대부분 외국계다. 이 기간에 한국 기업에 소송을 가장 많이 건 특허 괴물은 아메리칸 비히큐럴 사이언시스(33건), 골든브리지 테크놀로지(19건), 인더스트리얼 테크놀로지 리서치 인스티튜트(15건), 비이컨 내비게이션(12건) 등이었다.

현행 공정거래법으로도 지식재산권 남용 행위를 처벌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지식재산권 남용’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탓에 아직까지 특허 괴물이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내부 기준인 ‘지식재산권의 부당한 행사에 대한 심사 지침’을 보완할 방침이다.

미국이 최근 특허 괴물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추세라는 점도 공정위의 특허 괴물 규제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는 지난달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소송을 남발하며 각종 이득을 챙겨온 특허 괴물을 상대로 처음 실태 조사에 나섰다.

다만 주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특허 괴물을 국내 법으로 처벌하는 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논란거리다. 이학영 의원실의 홍진옥 보좌관은 “외국계 특허 기업이 공정위의 제재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외국계 기업도 국내 시장에 영향을 미치면 국내법을 적용받는다”는 입장이다. 예컨대 외국 기업 간 인수합병(M&A)이라도 국내 시장에 영향을 줄 경우 공정위의 반독점 심사를 받는다는 것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