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 중 하나인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의 건물 외벽이 경찰과 마약조직 간 충돌로 숨진 희생자들의 아내 사진으로 꾸며졌다. JR이라는 이니셜로 알려진 프랑스 작가는 ‘여성들은 영웅’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 마을 곳곳을 미망인들의 사진으로 장식해 놓았다. 리우데자네이루AFP연합뉴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 중 하나인 ‘모후 다 프로비덴시아’의 건물 외벽이 경찰과 마약조직 간 충돌로 숨진 희생자들의 아내 사진으로 꾸며졌다. JR이라는 이니셜로 알려진 프랑스 작가는 ‘여성들은 영웅’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 마을 곳곳을 미망인들의 사진으로 장식해 놓았다. 리우데자네이루AFP연합뉴스
리우데자네이루 콤플렉수 두 알레망 지역의 ‘파벨라’. 파벨라는 포르투갈어로 빈민촌이란 뜻이지만 거대 마약조직의 근거지를 뜻하는 대명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무려 30만명이 모여 사는 파벨라는 3년 전만 해도 마약조직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지난달 29일 이곳에서 만난 브라질 군경(軍警) UPP의 알베이루 병장은 “30년 동안 주정부도 건드리지 못하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마약조직은 정부의 전기를 훔쳐와 파벨라 주민들에게 팔며 세금까지 걷었다. 정부는 파벨라를 도심과 차단하기 바빴다. 오랜 기간 파벨라는 버려진 땅이었다.

지난해부터 파벨라는 브라질 변화의 희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2014년 월드컵이 임박하면서 파벨라와 관련된 치안 문제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자 궁지에 몰린 브라질 정부가 대대적인 정비 작업에 나선 것. 정부는 1년여의 계획 끝에 수천명의 군경을 투입해 마약조직을 소탕했다. 동시에 케이블카를 설치해 파벨라 주민들을 도심과 연결시켰고, 파벨라 내 경찰서에 무료 학교를 만들어 어린이들을 교육했다. 이곳에서 22년을 살았다는 에스테르 페르난데스(31)는 “예전에는 집에 가려면 총 든 갱들을 수없이 지나쳐야 했다”며 “지금은 훨씬 안전해졌고 지난해부터 정부의 장학금을 받아 뒤늦게 대학에도 들어갔다”고 말했다.

브라질에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월드컵,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사회의 눈이 쏠리고 있는 데다, 글로벌 거시경제 상황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처한 브라질 정부가 묵혀놨던 개혁 작업을 하나둘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라질 군경 UPP의 알베이루 병장이 ‘파벨라(빈민촌)’를 순찰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남윤선 기자
라질 군경 UPP의 알베이루 병장이 ‘파벨라(빈민촌)’를 순찰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남윤선 기자
대표적인 것이 부패방지법이다. 브라질 상원은 지난 6월 부패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부정부패로 적발될 경우 최소 형량을 2년으로 하고 가석방이나 사면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골자다. 브라질 의회는 2010년 발의된 이 법안을 3년 넘게 계류시켰다. 하지만 브라질 정부의 월드컵 과잉투자와 부정부패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대거 거리로 나오자 뒤늦게 법안을 통과시켰다.

산업 현장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브라질 세관은 지난해부터 통관 라인을 ‘빨강’ ‘노랑’ ‘녹색’으로 나눠 우수 업체는 녹색 라인에서 빨리 처리해주고 있다. 브라질 현지업체인 유니코바의 박영무 회장은 “예전엔 통관을 위해 세관 공무원에 로비하기 바빴는데 최근엔 많이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브라질 최대 국영 에너지기업인 페트로브라스에 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마리아 다스 그라사스 포스테르는 각종 입찰 비리로 시끄러웠던 회사를 대대적으로 개혁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하락과 중국 경제의 경착륙 우려는 개혁을 유도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2000~2010년 사이 브라질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경제 발전이 한창이던 중국은 브라질산 철광석을 엄청나게 사들였고, 선진국들의 양적완화(QE)는 원자재값을 뛰게 했다. 브라질에는 외국인 투자가 몰려들었지만 최근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올 초 취임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과도한 인프라 투자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수출국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QE 축소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원자재값은 하락세다. 브라질 성장률도 2010년 1분기 9%에서 올 2분기 3%대로 급감했다.

브라질 법무법인 디마레스트의 마리우 노게이라 변호사는 “브라질의 인프라 문제에 대한 외신들의 지적이 이어지면서 조금씩이지만 정부의 인식도 변하고 있고, 일부 항만 등은 민간 투자를 받아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브라질에서 10여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한 편무원 한국·브라질소사이어티 부회장은 “큰 돌은 굴리기 힘들지만 일단 움직이면 계속 굴러가지 않겠느냐”며 “2016년 올림픽 즈음에는 지금의 문제점들이 많이 개선돼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특별취재팀
브라질=남윤선 기자, 박래정 LG경제硏수석연구위원
인도네시아=김보라 기자, 이지선 선임연구원
멕시코=노경목 기자, 김형주 연구위원
터키=주용석 차장대우, 정성태 책임연구원
인도=이정선 차장대우, 강선구 연구위원

공동기획 한경·LG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