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사진)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이를 위해 정통성 있는 협상에 나선다면 우리는 대화할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할 준비도 돼 있다”고 지난 3일 말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케리 장관은 이날 일본 도쿄에서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인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를 가진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북한이 비핵화에 나선다면 6자회담 참가국들은 다시 북한과 대화하고 평화적인 관계를 맺을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특히 “북한 정권을 교체하려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케리 장관의 발언은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입장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분석이다. 케리 장관의 발언과 관련, 주한 미국대사관은 설명자료를 내고 “이 발언에는 새로울 게 없으며 미국의 오랜 정책을 다시 강조한 것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북한이 적극적인 대화 공세에 나서고 중국 역시 대화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전략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과 북한이 최근 베이징, 베를린, 런던에서 전문가와 정부 당국자가 참석하는 ‘1.5트랙 대화’를 이어왔다는 점, 그리고 최근 영변에서 5㎿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북한은 4일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함께 추진한다는 ‘병진노선’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했다.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우리 군대와 인민은 핵 무력과 경제 건설의 병진노선을 굳게 틀어쥐고 변함없이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명 비난도 석 달여 만에 재개했다. 대변인은 “박근혜와 그 일당이 그 누구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 미명하에 외세와 야합하여 우리의 체제전복을 노리고, 우리의 핵 무장을 해제하려고 분별없이 달려든다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박 대통령이 지난 1일 북한의 핵 포기를 촉구한 발언을 언급하며 “박근혜도 정치인이라면 세상만사를 똑바로 가려보고 격에 맞게 입을 놀려야 할 것”이라며 “유신독재자나 다른 괴뢰대통령들의 말로를 면치 못하게 된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북한이 진정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발전시켜 나아가고자 한다면 상호존중 정신에 입각해 상대방에 대해 품격 있는 언행부터 해야 할 것”이라며 “무엇이 고립을 탈피하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길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