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덴마크서 중간 급유…가을 접어들면서 강풍 불어
19세기 英·노르웨이 탐험 경쟁…美·러시아도 뜨거운 쟁탈전
○난센의 탐험로를 따르다
북극권의 바람은 확실히 달랐다. 선실 복도를 걷다가 비틀거리기도 했다. 바스코 알렉산더 선장은 “북극권이 가을로 접어드는 때라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일 새벽 배는 덴마크 북단의 스코우항 앞 바다에 잠시 멈춰섰다. 북해 진입을 앞두고 기름탱크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급유선이 다가오자 로버트 도나딕 기관장은 “북해는 배출가스통제구역(ECA:Emission Control Area)이라서 이 지역에 들어가는 배는 모두 저유황유를 의무적으로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급유를 마친 스테나폴라리스는 다시 천천히 북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북극해로 가는 1차 관문격인 북해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북해의 왼쪽에는 영국이, 오른쪽엔 노르웨이가 있다. 북극권 초입에 있는 두 나라는 19세기 북극 탐험에 앞장섰다. 최초의 북극 탐험가는 영국인 윌리엄 패리였다. 헤클라호를 타고 북극을 향해 나섰던 패리는 1827년 북위 82도45분까지 가는 데 그쳤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수많은 탐험가의 모험심을 자극했다.
노르웨이의 프리드쇼프 난센은 북극탐사선 프람호를 제작해 1893년 항해에 나섰다. 북극으로 가는 도중 얼음에 갇힌 난센 일행은 배에서 내려 카약과 개썰매 등을 이용해 북진을 계속했다. 난센은 탐사 2년여 만에 북위 86도13분 지점에 도착한 뒤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모든 대원과 함께 안전하게 귀국하면서 북극해의 해류와 수심 등 귀중한 항해 자료를 잔뜩 들고 귀환했다.
남청도 해양대 교수는 “난센이 했던 것처럼 이번 항해를 통해 북극항로 운항과 관련한 귀중한 정보를 갖고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강대국들의 불붙는 쟁탈전
“미합중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미국은 이곳과 이 주변 지역의 소유권을 공식적으로 획득한 것이다.” 1909년 4월6일 미국의 로버트 피어리는 사상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하자마자 이같이 쓴 메시지를 유리병에 담아 북극의 얼음 속에 집어넣었다. 이후 1세기 동안 미국과 소련은 북극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937년 소련의 폭격기 ‘북극1호’가 비행기로는 처음으로 북극점에 착륙했고 미국은 1958년 잠수정 노틸러스호로 얼음을 헤치고 북극점에 도달했다. 소련은 1977년 쇄빙선 아르크티카호를 북극점에 보냈다. 선박으로는 최초로 북극점에 닿은 것이었다. 2007년 8월엔 러시아의 잠수정 미르1,2호가 북극점 아래 4261m 해저점에 티타늄으로 만든 러시아 국기를 꽂았다. 미국의 피어리가 얼음 위 북극점에서 ‘영토선언’을 한 지 98년 만에 러시아가 바다 밑에서 벌인 ‘영토선언’이었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박사는 “이 사건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북극에 대한 경쟁이 다시 불붙게 됐다”고 설명했다. 북극해 쟁탈전이 시작된 것이다.
스테나폴라리스는 23일 오전 북해를 지나 북극권의 노르웨이해에 들어섰다. 120년 전 노르웨이의 탐험가 난센도 이 바다를 통해 북극으로 향했다. 당시 유빙들이 둥둥 떠다니던 노르웨이해는 이제 푸른 물결만 출렁이고 있다. 스테나폴라리스는 난센이 목숨을 걸고 헤쳐 갔던 그 길을 미끄러지듯 항해하고 있다.
스테나폴라리스 선상=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북극항로 승선기는 항로와 선박 통신사정을 감안해 주 1~2회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