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서 발생한 이른바 ‘낙지 살인사건’의 피고인이 살인 혐의에 대해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피고인이 무죄일 수 있다는 의구심(합리적인 의심)을 떨쳐 내려면 직접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만삭 의사부인 살인사건’처럼 직접 증거 없이 간접 증거로 유죄를 확정한 판례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2일 여자 친구를 살해한 뒤 낙지를 먹다 질식해 숨진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타낸 혐의(살인 등)로 기소된 김모씨(32)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주장과 변명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지만 범죄 사실을 인정하려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엄격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며 “숨진 윤씨가 질식사했다는 명백한 증명이 없으며, 김씨의 행위와 무관하게 낙지로 인해 기도가 막혔을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김씨가 이 사건과 별도로 기소된 자동차 절도건에 대해서는 일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김씨의 여자 친구 윤모씨(당시 21세)는 2010년 4월 인천의 한 모텔에서 질식,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한 달 뒤 숨졌다. 경찰은 이 사건을 사고사로 종결했다가 윤씨 앞으로 된 2억원 상당의 생명보험 수령자가 김씨란 점을 수상하게 여긴 유가족들의 요청으로 사건 발생 5개월 만에 재수사에 나섰다.

1심 재판부는 윤씨의 시신이 화장돼 직접 증거가 없는 상태였지만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 지난해 10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시신에 저항 흔적이 없었던 점을 참작, 김씨가 만취 상태였던 윤씨를 압도적으로 제압해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지난 4월 “코와 입을 막아 살해했다면 얼굴 등에 상처가 남는데 이런 흔적이 없어 낙지로 인해 질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살인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윤씨의 아버지는 확정 판결 직후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는데 법을 못 믿겠다”며 “살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보여줘야 유죄가 되는 것이냐”고 항변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