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호 JW중외그룹 회장(가운데)이 10일 중증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공연에 앞서 단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JW중외제약 제공
이종호 JW중외그룹 회장(가운데)이 10일 중증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공연에 앞서 단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JW중외제약 제공
“와, 소나무 할아버지 오셨다.”

10일 중증장애인 합창단 ‘영혼의 소리로’ 정기공연이 열린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공연장 대기실. 이종호 JW중외그룹 회장이 들어서자 단원들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친근한 동네 할아버지를 만난 듯했다. ‘소나무 할아버지’는 호가 송파(松坡)인 이 회장을 부르는 중증장애인 합창단원들만의 애칭이다.

이 회장은 백색증후군과 위암을 앓고 있는 최고령 단원 한대영 씨(55)의 손을 꼭 잡고 “많이 말랐네요”라고 위로했다. 단원 한 명 한 명의 손을 쥐며 “다음번 식사 모임에는 꼭 나와요” “요즘 그림은 잘 그리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이 회장의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였다.

홀트 일산복지타운이 중증장애인의 잠재 능력을 일깨워 재활 의지를 높여주기 위해 1999년 만든 ‘영혼의 소리로’는 2003년 이 회장을 만나면서 변화를 맞았다. 2003년 서울 잠실 올림픽펜싱경기장에서 열린 ‘대한간호협회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영혼의 소리로’의 화음을 처음 접한 이 회장은 다음날 박구서 홍보담당 상무(현 JW홀딩스 사장)를 급히 찾았다. 이 회장은 “내 귀에는 그 친구들의 노래가 천사의 소리로 들립니다. 우리가 도웁시다”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말은커녕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에 상당한 감동을 받은 듯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회장은 이후 11년째 후원회장을 맡아오고 있다. 뇌병변 다운증후군 정신·지체·언어 장애인들에게 합창은 매번 힘든 도전이었다. 노래 한 곡을 익히는 데 1주일에 세 번씩 연습해도 꼬박 6개월이 걸린다.

그런 합창단원들에게 이 회장은 누구보다 든든한 ‘응원단장’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홀트일산복지타운을 찾아 합창단원들과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했다. 크리스마스 때는 직접 선물도 나눠줬다. 유명 제약사 회장이 중증장애인들과 격의 없이 식사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일산 탄현동의 한 삼겸살집 주인은 합창단을 따로 불러 무료 식사를 제공하기도 했다.

JW홀딩스 회사 관계자는 “감동은 전염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2009년 이 합창단을 청와대에 초청한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가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정기 기부금은 물론 공연장 섭외, 합창단의 대외 활동까지 챙기고 있다. 2009년 합창단이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열린 ‘안톤 브루크너 국제합창대회’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았지만 비싼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자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섰다. 청와대와 관련 정부 부처는 물론 항공사에까지 협조를 요청해 비행기표를 구했다.

그해 ‘영혼의 소리로’는 특별연주상과 특별지휘자상을 받았다. 창단 때 막내였던 김현군 씨는 이제 솔로 파트를 맡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대화를 꺼려 ‘얼음공주’로 불렸던 한 단원은 미소로 관객의 박수에 화답하는 숙녀가 됐다. 이런 아이들을 지켜보는 이 회장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보였다. 그는 “처음 아이들을 봤을 때와 달리 갈수록 명랑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너무 좋다”며 “후원회장은 내가 맡고 있는 일 중 제일 무겁고 보람있는 감투”라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