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에 해당하는 뭄바이 달랄스트리트에 있는 인도 증권거래소(BSE). 지난 2일 오후 1시 인도의 대표적 IT기업인 와이프로 주가가 BSE 전광판에 표시돼 있다. 뭄바이=이정선 기자
미국 월스트리트에 해당하는 뭄바이 달랄스트리트에 있는 인도 증권거래소(BSE). 지난 2일 오후 1시 인도의 대표적 IT기업인 와이프로 주가가 BSE 전광판에 표시돼 있다. 뭄바이=이정선 기자
['위기의 신흥국' 인도를 가다] '몬순 효과' 경제에 단비…평균 25세 '젊은 인도'는 성장 기폭제
2000년대 중반 인도를 고성장 시대로 이끌었던 ‘인디아 샤이닝(India shining·빛나는 인도)’은 다시 올 수 있을까.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RBI) 총재 취임 이후 인도 경제가 다소 진정되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물음표를 던진다. 경상수지 적자로 달러당 70루피를 돌파할 것이라는 비관론과 인구 12억명인 ‘코끼리 경제’의 잠재력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낙관론이 엇갈린다.

지난달 30일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의회 단상에 섰다. 루피화 환율이 달러당 68.83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 이틀 만의 등장이었다. 세계의 눈길이 쏠린 이날 그는 “1991년 외환위기가 재연될 위험이 전혀 없다”고 강조하면서 뜻밖의 ‘몬순(열대성 폭우)’을 강조했다. “올해 몬순 강우량이 넉넉해 농산물 생산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몬순이 인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기에 경제 회복의 주된 근거로 삼은 것일까.

○몬순 인도경제 소방수 역할할까

몬순은 인도 경제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다. 보통 6~9월 지속되는 몬순 기간에는 연평균 강수량의 80%가 내린다. 관개시설이 전체 농지의 40% 정도에 불과해 대다수 농민은 몬순에 의지한다. 몬순 작황에 따라 국내총생산(GDP)의 최대 3%가 좌우될 정도다. 몬순 강우량이 예년 대비 15%가량 적었던 지난해 인도의 GDP는 5% 이하로 떨어졌다.

델리에서 만난 아툴 다완 딜로이트컨설팅 북인도총괄본부장은 “인도의 농업은 GDP의 15% 정도지만 전체 인구의 50~60%가 농업 관련 일에 종사한다는 점에서 몬순의 파급력은 크다”고 진단했다. 몬순 효과는 비농업 부문에도 미치고 있다. 비벡 래 인도 석유장관은 지난 7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4~7월 몬순으로 인해 트럭 운송이 줄고 농부들이 관개 펌프를 가동하지 않아 경유 사용이 1.1% 감소했다”고 밝혔다. 전체 물량의 80%를 수입하는 원유가 경상적자를 심화시키는 인도 시장에는 반가운 호재다.

○인도판 ‘금 모으기’ 가능한가

인도 경제를 좌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금이다. 달러 유출의 충격을 둔화시킬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면 경상수지 적자를 악화시키는 ‘양날의 칼’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어서다.

인도 국민의 금 사랑은 남다르다. 지난해 금 수입 규모는 약 840억달러로 원유 수입(1810억달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결혼 예물로 금 장신구를 지참하는 풍습이 있는 데다 금을 안전자산으로 여기는 관행도 뿌리 깊다. 인도의 금 보유량은 총 2만t가량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인도 정부가 금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수입관세율을 올 들어 10%까지 올렸지만 몬순 풍작과 가을 결혼시즌이 맞물려 금 수입이 더 증가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인도 정부는 ‘금 모으기’에 나설 뜻을 밝혔지만 회의적 시각이 많다. 뭄바이에서 만난 카누 도시 웰링카대 재무학과장은 “국민은 금을 안전자산으로 여길 뿐만 아니라 힌두사원에 공양하기 위한 종교적 목적으로도 활용하기 때문에 금 모으기가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혁신·경제개혁이 관건

몬순과 금 등이 인도 경제에 당장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면 중·장기적으로는 경제개혁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절반가량이 새나가는 보조금 문제를 비롯해 제조 기반 확충, 도로·철도 등 인프라 개발 등이 당면과제로 거론된다. 시장을 잘 아는 스타 경제학자 출신 라잔 RBI 총재에 대한 기대도 상당하다. RBI는 그의 취임 이틀 만인 6일 외국 투자자들이 증권사를 통해 직접 장내 주식을 추가 매입하는 방안을 허용하는 조치를 내놔 시장의 기대에 화답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경제개혁 조치는 내년 5월 총선이 실시된 이후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홍콩에서 근무하는 권영선 노무라증권 아시아담당 선임이코노미스트는 “경상수지 적자가 심한 인도는 그동안 제조업 수준 향상, 수출 증가의 선순환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지나치게 많은 보조금 등의 과제를 해소하려면 과감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잠재력 여전…“인도는 EU”

현지 리서치회사인 맥스틴에 따르면 현재 12억명에 이르는 인도 인구 중 4억5000만명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의 중산층 정도에 해당하는 인구는 2억명에 이른다. 화상(華商)에 빗대 이른바 ‘인상(印商)’이라고 불리는 해외 진출 상인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두바이의 경우 상권의 60%를 인도인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에 근무하는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인도는 빈곤층이 많지만 중산층 인구만 해도 전체 한국인보다 많다”며 “몇몇 지표만 갖고 인도를 빈곤국으로 평가하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평균연령이 25세라는 역동성도 강점으로 꼽힌다. 중국 아프리카 진출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는 입지 여건이 장점이다.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독일→미국→일본→중국을 거친 글로벌 제조기지창이 결국 인도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일본은 이미 인도의 잠재력에 승부를 걸고 있다. 인도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에 적극적이고, 라자스탄 지역에는 일본 전용 공단을 조성해 가동 중이다. 인도가 접경국인 중국과 사이가 나쁘다는 점을 파고든 일본의 대중국 견제 심리도 하나의 배경이다.

공식언어만 18개이고 28개 주마다 다른 문화가 있는 인도는 지방자치 권한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중앙정부의 정책을 주정부가 거부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최동석 뉴델리 KOTRA 관장은 “인도시장은 ‘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단일국가로 바라보기보다 유럽연합(EU)과 같은 시장으로 간주해 각 주에 맞는 전략을 세워 시장에 진입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델리·뭄바이·푸네=이정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