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한·미 정상회담 부속행사 중에 양국 대통령이 디트로이트시를 방문하는 행사가 있었다. 디트로이트 외곽의 주거지역을 지나갈 때 길 옆의 빈 주택들이 유리창이 깨진 상태로 방치돼 있는 모습을 보면서 산업의 흥망성쇠가 찰나에 이뤄진다는 실증사례 앞에 숙연해졌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세계지리 시간에 미국을 대표하는 공업도시로 설명됐는데 불과 50년도 지나지 않아 황폐한 모습으로 변한 것이 큰 충격이어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제 디트로이트가 180억달러 규모의 상환불능채무를 안고 파산한 소식에 한국 경제가 이룬 지난 50년의 성공도 찰나에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앞서는 것은 기우일까.

디트로이트가 망가진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 첫 번째 관점은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상실이다. 일제 자동차의 경제성, 편리함, 내구성 앞에 미국산 자동차가 밀리기 시작하면서 디트로이트 경제가 위축되고 재정수입이 줄어든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강력한 자동차노조 때문에 과도한 복지지출을 감수해야 했던 미국 자동차산업은 가격경쟁력을 잃게 되고 그만큼 연구개발비 지출도 줄어들어 기술 수준이 뒤떨어지면서 나락으로 빠져든 것이다.

두 번째 관점은 복지를 중시하는 진보주의의 실패로 보는 견해이다. 디트로이트는 1962년 이래 민주당에서 시장직을 독점해 왔고 시의회도 민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재정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 50개 주 경제를 비교 분석한 ‘잘사는 주 못사는 주’ 보고서에 의하면 세율이 낮고 재정지출을 적게 하며 복지지출도 적은 주일수록 경제성장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 장면에서 한국을 들여다보면 한국은 강력한 노조가 기업의 임금수준과 복지지출 증가를 견인하고 있고 보수정부가 들어섰는데도 복지지출의 증가를 국정 아젠다의 최상위에 놓고 있다.

한국 경제의 오늘이 디트로이트의 어제와 비슷하게 보인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 경제는 외바퀴 자전거와 같아서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경제는 가다가 서도 쓰러지지 않는 세발자전거가 돼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갈음할 수 있다. “아무리 가격을 비싸게 책정해도 한국제품을 살 수밖에 없는 독보적 제품이 있는가.” 안타깝지만 거의 없다. 남보다 싸고 좋아야 사는 제품이 대부분이다.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고 복지재정이 커지는 쪽으로 가고 있는 한국 경제는 자청해서 쇠락의 길을 가는 형국이다. 기업 때리기와 복지증진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은 외바퀴 자전거의 진실을 모르거나 다른 의도가 있어 외면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보살핌의 정치’가 국민들에게 호소력이 있다는 역설이다. 아르헨티나를 파멸의 길로 인도했다는 비판과 성녀라는 평가가 엇갈리는 에바 페론이 예술을 통해 미화될 수 있는 근저에는 ‘보살핌의 정치’가 갖고 있는 흡인력이 존재한다.

디트로이트를 한국 경제의 앞날을 위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국은 새로운 산업을 찾는 노력에 앞서 기존 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창조경제가 새로운 것에 초점을 맞추면 5년 내에 가시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 먼 훗날을 보며 새로운 산업을 연구해야 하지만 기존 산업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 그래야 가시적 성과도 거두면서 창조경제가 탄력을 받게 된다.

소금에 절인 청어가 유럽인들의 식단에 즐겨 오르던 시절 네덜란드산 염장청어는 다른 나라 제품에 비해 몇 배 비싸게 팔렸다. 철저한 품질관리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염장청어를 만드는 데 첨단기술이 필요하지 않았을 터이고 ‘정성어린 품질관리’도 창조경제의 훌륭한 한 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창조경제는 쉬운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수학시험을 볼 때 어려운 문제부터 풀겠다고 고집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0점이 나올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주어진 시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최중경 美헤리티지재단 객원연구위원 choijk195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