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여의사 보유한 중국도 회원 가입…글로벌무대서 여의사들 목소리 커질 것"
“‘얘는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 팔자야.’ 어렸을 때 관상을 볼 줄 아시던 외할머니께서 저를 두고 하시던 말씀이에요. 의사가 되면서 할머니 말씀이 틀린 줄 알았는데, 결국 할머니가 관상을 잘 보셨네요.”

지난달 이화여대에서 열린 세계여자의사회 학술대회에서 제30대 세계여자의사회장으로 취임한 박경아 연세대 의대 교수(63·사진). 최근 연세대 의대 해부학 연구실에서 만난 박 교수는 “앞으로 세계여자의사회장으로서 해외 출장이 잦을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여자의사회는 세계 여성 인권 향상과 빈곤국 의료 지원을 위해 1919년 출범한 의료인 단체. 현재 47개국 2만여명의 여의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한국인이 이 단체의 수장을 맡은 것은 주일억 전 회장(1987~1989)에 이어 두 번째다.

박 교수가 세계여자의사회를 맡으면서 세운 가장 큰 목표는 회원국을 늘리는 것이다.

“성폭력·가정폭력 예방 캠페인은 물론, 아프리카에 아직도 남아 있는 소녀 할례 금지, 정부 주도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 등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라도 회원국과 회원 수를 늘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단체 목소리도 커지고 잘못된 것을 하루빨리 바로잡을 수 있죠.”

박 교수는 이어 “지난 7~8년간 대만여자의사회와 명칭 문제로 부딪쳤던 중국이 새로 가입했다”며 “100만명의 여의사를 보유한 중국이 회원국이 됐으니 세계여자의사회 덩치가 많이 커진 셈”이라고 말했다. 1950년대부터 CMWA(China Medical Women’s Association)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온 대만이 ‘China’ 명칭을 중국에 양보한 데에는 박 교수의 중재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박 교수는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남편(홍승길 전 고려대의료원 의무부총장)과 함께 독일로 유학, 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최초 여성 해부학자인 나복영 고려대 명예교수의 딸로 어머니에 이어 해부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가족이 교수로 재직 중인 경우에는 임용 불가’라는 규정에 걸려 모교가 아닌 연세대에 자리를 잡았다는 박 교수. 항간에 박 교수를 두고 하는 말인 ‘고려대가 연세대에 준 가장 큰 선물’이 맞느냐고 묻자,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박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후배 여의사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남녀차별이 심했고, 아직도 의료계에는 분명 성차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차별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실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남자 혹은 여자이기 전에 의사이니까요.”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