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초전기 재료업체인 엠케이전자는 정부의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다가 중도에 포기했다. 매출에서 연구개발(R&D)비 비율이 2%를 넘어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한 탓이다.

엠케이전자는 지난해 연구개발에 61억원을 썼다. 작년 순이익 68억원에 버금가는 금액이다. 하지만 금을 소재로 해서 만드는 ‘본딩 와이어’가 주력 제품이다 보니 원재료비 지출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매출 7061억원을 기록한 이 회사는 금을 사들이는 데 5600억원을 썼다. 이 때문에 ‘매출 대비 2% R&D 비용 지출’이라는 허들을 넘지 못했다.

돈 많이 벌수록 좋을텐데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요? 매출 많아 눈물짓는 중견기업들

○조세특례·화관법, 매출이 잣대

매출은 기업 규모를 재는 유용한 잣대의 하나다. 법률이나 정책 등에서 매출을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업 특성상 매출이 과도하게 많이 잡히는 기업이 많다. 매출 때문에 규제를 당하거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가업 승계 때 적용하는 조세특례 제도가 대표적이다. 중소·중견기업은 가업 승계 때 세금 감면을 받으려면 매출이 2000억원 미만이어야 한다. 이를 넘어가면 대기업으로 간주한다.

산업계에서는 이 기준이 너무 빡빡해 대를 이어 기술을 발전시키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부는 이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3000억원으로 한도를 높이기로 가닥을 잡았지만 업계에서는 “최소 1조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구개발 법인세액 공제에서도 매출 잣대가 들어간다. 중소기업은 공제율 25%를, 매출이 1500억원을 넘으면 8%의 공제율(3000억원까지)을 적용받는다. 대기업(3~6%)보다 공제율이 높은 편이지만 종업원 수 300인 이하 중소기업엔 불만일 수밖에 없다.

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에서도 기업이 화학물질 누출 등의 사고를 내면 해당 사업장 매출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익이 아닌 매출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손실이 발생한 회사도 거액의 돈을 물어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업계에서는 “사업을 접으란 소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매출 만능주의 폐해 우려”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의 1차 협력업체들은 2, 3차 업체에서 납품을 받아 반제품 등을 만들어 공급하기 때문에 생산원가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외형에 비해서는 수익률이 낮은 경우가 많다. 조원 단위 매출을 거두고도 이익은 수십억원 수준에 머무는 회사들도 있다.

반면 온라인 게임업체나 바이오 관련 기업은 생산원가 비율이 낮다. 기업 규모를 매출로 재는 것은 업종 특성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양균 중견기업연합회 조사통계팀장은 “기업 외형을 매출로 판단하는 것은 창조경제 시대에 맞지 않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