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실업(회장 김동녕·사진)은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의류를 생산하는 업체다. 유아 및 아동용 브랜드 ‘컬리수’를 제외한 의류 제품을 해외업체 등에 납품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가 거의 없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관측과 달리 이 회사에는 해외 명문 패션스쿨 출신을 포함한 디자이너들이 많다. 해외 유명 의류업체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의류를 자체적으로 개발·생산할 수 있는 ‘디자이너 회사’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올해 1조2000억원을 넘보고 있다.

◆“연봉, 삼성 이상 주겠다”

한세실업의 지난해 신입사원 연봉은 3900만원이다. 의류업계 1위로 꼽히는 제일모직과 같은 수준이고 LG패션(3800만원), 코오롱패션머티리얼(3500만원)보다 많다. 중견기업연합회가 분석한 섬유·의복·가죽 분야 평균연봉(2996만원)보다는 30%가량 더 주고 있다. 한세실업 측은 “성과급과 차량유지비 등 복지수당을 합친 총 연봉은 5대 그룹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파격적인 해외연수도 패션업계 종사자들에게 입소문이 난 이유 중 하나다. 디자이너를 포함한 모든 신입사원은 입사와 함께 베트남 현지 법인으로 연수를 떠난다. 입사 1년 뒤부터는 전 직원에게 2년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한세실업 해외 생산법인 근무 기회를 준다. 한세가 1996년부터 시작해 17년째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 인재양성 프로그램이다.

업계 평균보다 높은 연봉 정책은 창업주인 김동녕 한세실업 회장의 ‘인재중시 경영’에서 시작됐다. 김 회장은 평소 “높은 연봉을 지급해야 동종 업계에서 좋은 인재가 몰리고 성장의 발판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백 한세실업 부회장도 “샐러리맨들의 가치는 급여가 말해준다”며 “삼성보다 15% 이상 연봉을 더 주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디자인이 경쟁력

한세실업은 전체 직원의 약 10%인 57명이 디자이너 또는 연구인력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미국 파슨스, 뉴욕주립대 산하 디자인 전문학교(FIT) 출신이다. 이들의 발길을 이끈 것은 디자인연구소다. 한세실업은 자체적으로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ODM 비중을 늘리면서 2003년 원단개발팀과 디자이너팀으로 구성된 디자인연구소를 세웠다. 해외 유명 브랜드 수주를 위해선 패션 트렌드를 분석하고 창의적 디자인을 먼저 개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08년 3월엔 미국 맨해튼에 해외 디자인사무소도 열었다.

디자인연구소는 해외 바이어들이 ‘제품 콘셉트’를 주면 자체적으로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먼저 콘셉트를 잡아 바이어들에게 역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엄진 디자인 연구개발본부 부실장은 “디자인 트렌드는 시중에 나온 제품들보다 1~2년 앞서야 하고 소재는 그보다 더 먼저 개발해야 한다”며 “한세실업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패션 트렌드를 분석하고 디자인하는 회사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세계 4대 SPA브랜드인 H&M, 자라, 유니클로, 망고 제품을 수주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트렌드 분석은 물론 창의적인 소재와 디자인 개발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도 적자 낸 적 없어

김동녕 회장이 1982년 설립한 한세실업은 나이키, 갭(GAP), 랄프로렌 등 미국인이 즐겨 입는 유명 브랜드 의류와 대형 유통업체들의 자체상표(PB) 의류 등 연간 2억장이 넘는 옷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2003년엔 인터넷 서점 ‘YES24’를 인수해 1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내기도 했다. 한세실업은 회사 창립 뒤 30년 동안 한 번도 적자 경영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