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해외동포 후손들
가난에 한 맺힌 한인 1033명이 영국 화물선에 실려 멀고 먼 묵서가((墨西哥·멕시코)로 향한 것은 1905년이었다. 짐짝보다 더 못한 화물칸에서의 40일, 그렇게 태평양을 건넜으나 애니깽(용설란) 농장의 생활은 훨씬 더 비참한 고통의 나날이었다. 멕시코로, 나중엔 쿠바로도 옮겨간 애니깽의 눈물 역사는 김영하의 장편소설 ‘검은 꽃’에 실감나게 담겨 있다.

그보다 3년 전, 증기선으로 역시 제물포를 떠난 104명의 한인들 앞에 펼쳐진 것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이었다. 이곳 또한 극한의 근로여건이었다. 한인의 슬픈 이주사가 어디 애니깽과 사탕수수 농장뿐이랴. 1937년 연해주 한인들은 어느 날 화물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강제 이주당했다. 역사에 남은 스탈린의 소수민족 탄압사의 한 페이지다. 1960년대엔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로 나가 조국 발전에 기여했다.

유대인의 디아스포라가 슬프면서도 끈질긴 소수 민족의 고난사를 상징하지만 한인도 못지않다. 아직 생존하는 1세대부터 그 후손의 후손까지 한자락 기구한 사연이나 우여곡절이 없는 해외동포들이 없다. 재외동포재단이 집계한 해외동포는 현재 726만7000명이다. 아시아에만 406만명이지만 지구상 어디 진출하지 않은 곳이 없다. 미주엔 252만명, 유럽도 65만6000명이나 된다. 중동과 아프리카에도 1만6000명, 1만1000명씩 나가 있다.

고난과 역경을 넘어 삶의 터전을 잡고 뿌리를 내려가는 인생역정들이다. 한인 이주사 100년을 지나면서 가지는 2세를 넘어 3, 4세로 뻗어간다. 엊그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여름 휴가 중 한인 2세 동포들과 나란히 골프치는 모습이 외신으로 들어왔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함께 현직 미국 대통령과 라운딩한 뉴욕의 전은우 변호사는 오바마의 정치적 후원자라고도 한다.

활동 분야도 다양하다. 며칠 전 막을 내린 국내 여자 아이스하키 리그에서 맹활약한 캐나다 국적의 박은정, 임진경 선수도 있다. 이들은 아예 한국 국적을 받아 2018년 평창올림픽 때도 뛰겠다고 한다.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그 어둡고 우울한 1세대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광복절을 계기로 멕시코와 쿠바의 애니깽 4세 40명이 재외동포재단 초청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이국적 외모에 스페인말을 하지만 뿌리를 찾는 열의만큼은 진지했다. 임진각과 현충원에서 ‘We are ONE Korean(우리는 하나의 한국인)’이라는 플래카드도 들어올렸다. 대견하다. 해외이주 한인의 모든 후예들이야말로 21세기 글로벌사회를 촘촘하게 연결하는 한인 네트워크다. 고통의 이주사를 딛고 굳건히 일어선 그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