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 스웨덴 '사회주의' 중국도 영리병원 허용하는데…
병원은 거의 모든 국가에서 ‘영리(營利)'와 ‘비(非)영리’ 두 가지로 운영되고 있다. 국민의 기본적인 건강을 지키는 일은 사회가 책임(비영리)져야 하지만 고급 의료 수요는 민간(영리)에 맡기는 이원화 체제를 갖추고 있다. 미국 일본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인 스웨덴이나 프랑스는 물론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인 중국에서도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있다.

◆복지국가도 영리병원 운영

비영리병원과 영리병원은 설립 주체와 이익처리 방법에서 다르다. 비영리병원은 학교·사회복지단체 같은 비영리단체나 의사만 설립할 수 있는 반면 영리병원은 주식회사처럼 일반 투자자들이 투자해 만들 수 있다. 비영리병원은 수익이 나도 의료기기 구매나 인건비 지출 등 병원에 재투자해야 하지만, 영리병원에선 투자자에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다.

미국은 전체 병원 중 영리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17% 정도다. 5795개의 병원 중 998개가 영리병원이다.

대표적 영리병원인 HCA(Hospital Corporation of America)는 전국에 163개 병원과 105개 수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뽑은 수익성 좋은 미국 병원 25개 중 15개가 HCA 같은 영리병원이었다.

무상의료 국가인 스웨덴에도 영리병원들이 많다. 종합병원급이 스톡홀름에만 4개나 있다. 세인트 고란병원이 영리병원으로는 가장 유명하다. 원래는 비영리병원이었지만 1994년부터 단계적으로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으로 탈바꿈했다.

스웨덴 보건복지부의 언론비서담당 데이비드 윙스는 “1990년대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병원 규제를 완화하고 민영화를 허용했다”며 “세인트 고란병원이 영리병원이 된 이후 대기시간이 줄고 서비스가 향상되자 주변 병원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영리병원이 전체 병원의 20% 수준이다.

◆달라진 아시아 국가들

아시아에선 태국이 영리병원 설립에 가장 적극적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직후 민간 병원의 43%가 존폐 위기에 처하자 정부가 의료시장을 개방했다. 외국인이 태국 병원 지분의 49%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범룽랏병원을 비롯한 13개 병원이 태국 주식시장에 상장됐다. 병원 의료비에 대한 가격 규제도 없다. 외국 전문경영인이 병원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이 같은 의료개방 정책으로 태국 수도인 방콕은 세계 최대 의료관광도시로 떠올랐다. 해외 환자가 2011년 156만명이다. 태국 정부는 올해 방콕을 찾는 외국인 의료관광객이 200만명을 넘어서고 매출이 2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대표적 영리병원은 방콕의 범룽랏병원으로 첨단 의료설비에 호텔급 시설을 갖추고 있다. 직원 2000명 중 700명이 의사다. 환자 1인당 2명의 간병인을 배치하고 외국인 입원환자 가족을 위해 레지던스를 빌려주고 있다. 영어는 물론 한국어와 일본어 등 26개 언어로 상담과 홍보를 한다.

중국은 1994년 국무원(중앙정부)의 ‘의료기구관리 조례’ 개정으로 민간 영리병원 제도를 도입했다. 지금은 전체 병원의 36%가 영리병원이다. 중국 의료계 관계자는 “환자로부터 선택받아 생존하는 적자생존의 시장 원리가 중국 의료계에 작동하고 있다”며 “영리병원들이 지속적인 원가절감 노력으로 의료비를 할인하기 때문에 일부 분야에서는 비영리병원보다 오히려 싸다”고 말했다. 국민 건강 문제에서는 보수적인 일본도 2000년대 초 ‘구조개혁특별구역제도’ 안에서는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했다.

◆한국은 ‘비영리’만 허용


그러나 한국의 병원들은 모두 ‘비영리병원’이다. 건강보험체계 무력화를 우려하는 여론 때문에 영리병원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영리병원 도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은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상업화로 인해 의료비가 폭등하고 현행 건강보험 체계가 무력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병원들도 주식 발행 등으로 외부 자본을 조달할 수 있는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경쟁이 격화되고 결국 중소병원이 도산 위기에 빠질 것을 우려한다.

하지만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고 병원의 의료 수준을 높이려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박형근 제주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500병상 규모의 병원을 만드는 데 250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며 “여기에다 인력과 노하우 등을 갖추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수한 의료인력을 국내시장에서 소화하고 중소형급 병원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나기 위해서는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영리병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주식회사처럼 일반투자자로부터 자본금을 조달해 설립하고 운용수익금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 부동산 투자나 장례식장 운영 등 각종 이익사업도 벌일 수 있다.

이준혁/은정진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