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모를 불황의 터널에서도 남다른 노력과 혁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우뚝 선 성공기업들의 숨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발굴한 기업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편집자 주>
[BIZ 스토리⑪]저비용항공사 진에어의 '무한도전'…"과감하게 빼고 확실하게 더해라"
"학생, 비행기 곧 뜬다는 안내방송 못 들었남? 이렇게 돌아다니면 승무원 아가씨들한테 혼나."

취항 초기 진에어 승무원들은 종종 나이가 지긋한 승객들에게 꾸지람 아닌 꾸지람을 듣곤 했다. 치마 유니폼과 흐트러짐 없는 올림머리로 대표되는 여느 승무원들의 모습과 거리가 먼 진에어의 유니폼 탓이다.

캐주얼한 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스니커즈 운동화까지. 지금은 진에어의 상징이 된 유니폼이지만 초창기만해도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의 근원지였다.

대한항공 계열의 저비용항공사(LCC‧Low Cost Carrier) 진에어의 성공스토리도 이와 유사하다. 풀 서비스 항공에 익숙한 승객들을 대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던 것.

그러나 이제는 그 모험 덕에 국내 LCC 중에서 눈에 띄는 고공비행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2475억, 영업이익 145억원으로 창립 이후 최대 실적을 달성하면서 수익성 부문에서 업계 1위로 올라섰다.

올해 초 진에어의 새로운 사령탑에 앉은 마원 대표(55)에겐 다소 부담스러울 만큼 훌륭한 성적표다. 그 부담감이 오히려 기분 좋은 긴장감을 준다는 마원 대표를 서울 등촌동 본사에서 만났다.

◆ 가격경쟁력 위한 '무한도전'…취항 5년 만에 수익성 1위 달성

"진에어 대표로 취임한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뭔지 아십니까? 경쟁이 치열한 LCC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에어 만의 서비스가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한 질문이죠. 비용을 낮추기 위해선 '차별화된 서비스'가 아닌 '덜어내는 서비스'가 핵심이니까요. 서비스를 포함해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모두 줄인 것이 지금의 진에어를 있게 한 비결이죠."

마 대표의 설명대로 진에어는 사업 초기부터 불필요한 비용을 최소화했다. 이를 위해 업계가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도전도 서슴지 않았다. 존(Zone) 좌석제와 자체 개발 예약·발권 시스템 도입이 대표적이다.

존 좌석제는 A~C로 구분한 존만 지정, 먼저 도착한 승객이 지정 구역 내 좌석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원하는 좌석에 앉으려는 승객은 서둘러야 하기 때문에 항공사 입장에선 여객기 연착으로 인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초반엔 지정좌석제에 익숙한 승객들의 불만이 쇄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와 놓고선 좌석을 바꿔달라고 떼쓰는 승객들도 있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존 좌석제는 승객들의 시간 엄수를 유도해 연착을 줄이는 효과를 냈습니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비용 절감 효과를 냈죠. 연착으로 스케줄이 꼬이면 운항 횟수가 줄고 착륙 공항을 변경해야 할 경우 유류비도 추가되거든요. 제 때 출발하지 못한 승객들에게 지불해야하는 숙박비와 교통비도 모두 비용이죠."

예약·발권 시스템 역시 비용을 줄이는 비결로 꼽힌다. 진에어는 업계 최초로 자체 예약·발권 시스템을 개발, 취항 초기부터 국내선 서비스에 이를 도입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외부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체 시스템이 경제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원활한 예약·발권이 필수적인 취항 초기부터 자체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건 사실 모험이었습니다. 실제 초기에는 잦은 오류 탓에 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시스템 복구에 매달렸죠. 그런데 1년에 6000번이 넘게 뜨는 국내선의 예약·발권 서비스가 모두 비용이 된다고 생각해보세요. 장기적으로는 수 십 억원의 비용을 절약한 셈이죠."

자칫 무모할 수 있는 시도는 곧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로 돌아왔다. 2008년 취항 후 3년 만에 영업이익을 내며 업계 최단 기간 흑자 달성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항공기 구입 등 초기투자비용이 높아 수익 구조를 안착시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항공업계에선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 다 줄여도 포기 못하는 단 하나 '안전'

'덜어냄의 미학'을 아는 마 대표도 결코 양보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안전'이다. 그가 대표로 취임하자마자 한 첫 번째 일도 안전보안팀을 실로 격상시킨 것이다. 인력 구성엔 변화가 없는 조직개편이었지만 전 직원에게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였다.

"취항 후 무사고 기록을 이어가고 있지만 크고 작은 사고가 있을 때마다 해당 항공사 못지않게 가슴이 내려앉습니다. 행여나 불의의 사고로 저가항공사의 안전은 믿을 수 없다는 주홍글씨를 남기게 될까봐서요. 그래서 큰 비용이 들어도 안전만큼은 타협하는 법이 없죠."

안전에 대한 마 대표의 고집을 반영하듯 진에어는 조종사 채용이나 항공기 정비에 아낌없는 투자를 실천하고 있다.

조종사 지원 조건으로 200~250시간의 비행 경험을 요구하는 타 LCC와 달리 진에어는 1000시간으로 그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정비의 경우 비용을 더 주고라도 대한항공 정비팀에 맡긴다. 인건비가 싼 중국이나 동남아 업체에 아웃소싱을 맡기는 경쟁사들과 차별화된 부분이다.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 등 항공 사고가 잇따르면서 마 대표는 안전 고삐를 더욱 바짝 죄고 있다.

"아시아나기 사고 이후 국토부와 국적 항공사들이 안전 대책을 점검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사고가 난 곳은 대형항공사지만 LCC들의 안전이 더 우려된다는 게 당시 분위기였죠. 그래서 곧바로 안전 강화를 위한 대응전략을 짜고 이달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신뢰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이에 따라 진에어는 8월부터 △시계 비행(조종사가 제반 시설에 의존하지 않고 육안으로 외부를 확인하는 비행) 훈련 시간 2배 증가 △특수공항 시뮬레이션 훈련 강화 △특수공항 운항승무원에 베테랑 기장 투입 등을 시행하고 있다.

◆ 오너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일 뿐…"직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안전에 대한 강조와 함께 마 대표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바로 '회사의 주인은 직원'이라는 말이다. 말단 직원으로 대한항공에 입사해 진에어 대표에 오른 그는 이 말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BIZ 스토리⑪]저비용항공사 진에어의 '무한도전'…"과감하게 빼고 확실하게 더해라"
"대한항공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회사의 오너가 될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연령 제한에 걸리지 않는 곳이라 선택한 것이었으니까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만큼 '평생 다닐 나의 회사'라고 생각하니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됐죠. 진에어도 마찬가지예요. 오너인 저보다 20~30년 이상 회사를 이끌어야 하는 직원들이 진짜 주인입니다."

마 대표가 말로만 주인의식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직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의사 결정에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에 30여 년간 몸담았지만 대형항공사와는 또 다른 환경이기 때문에 항상 질문을 던집니다. 예약‧발권 체계가 비효율적인 건 아닌지, 더 쉽게 할 방법은 없는지, 고객 불만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해결 방안이 충분한지 등 묻고 직원들의 답을 듣죠. 문제와 해결책은 매일같이 해당 업무를 하는 직원들이 가장 잘 알 테니까요. 저의 역할은 각자의 소리를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불과해요.”

마 대표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 듣기 위해 ‘지니 패밀리 데이’를 마련하기도 했다. 각 팀별로 자유 주제에 대해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 이를 경영에 반영하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지난 4월에는 '상황 및 자기 체형에 맞는 청바지 코디법'에 대해 토론하고 새로운 유니폼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 바퀴벌레에 혼쭐난 진에어…승객 불만 대처·성장 전략 손본다

승승장구하던 진에어는 최근 바퀴벌레 소동으로 혼쭐이 났다. 그 덕에 마원 대표는 끊었던 담배에 손을 댔다. 비행기에서 바퀴벌레가 나와 승객이 항의한 일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처음엔 왜 하필 우리 항공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싶어 억울했습니다. 국토부 규정보다 엄격하게 방역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속상한 마음에 회사 옥상에 올라 끊었던 담배를 피웠죠. 그런데 담배를 피우며 차분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잘된 일이더라고요. 다시는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단초를 준 거니까요."

마 대표는 바퀴벌레 소동을 계기로 방역 체계 뿐 아니라 승객 불만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처하는 매뉴얼을 점검하고 있다. 바퀴벌레를 발견한 승객이 탑승객 전체에 공식 사과할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3년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성장 궤도에 오른 진에어의 중장기 청사진을 구체화하는 것도 그의 과제 중 하나다. LCC가 갈 수 있는 중‧단기 노선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경쟁마저 심화되고 있어 마 대표의 고민은 깊다.

"현재 동아시아 권역에서 LCC가 들어갈 수 있는 노선 중 비행기가 안 뜨고 있는 곳이 없습니다. 취항 초기에는 단독 노선을 중심으로 수익을 냈지만 이 수익 모델은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죠. 새로운 활로를 찾아 중장기 성장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마 대표가 선택한 활로는 해외 시장 공략과 유료 서비스 창출이다. 이미 내국인 승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해외로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해외 시장에서 판매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지 맞춤형 예약·발권 시스템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특히 기내 서비스 유료화에 대한 기대감을 비췄다.

"말레이시아 국적 LCC 에어아시아는 기내 수하물마다 비용을 매기고 아일랜드 국적 LCC 라이언에어는 기체에 이름을 넣어주는 조건으로 홍보비를 받습니다.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유료화하는 거죠. 국내 LCC에서도 몸무게에 따라 티켓 가격이 달라지고 기내 화장실을 돈 내고 이용해야 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누군가는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하겠죠. 그러나 다양한 옵션을 주고 가격 선택권을 넓히는 게 LCC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오너. 최대 실적 행진에 조바심 내지 않고 장기 전략을 세우는 마원 대표는 높이 날기에 멀리 볼 수 있는 진에어의 모습 그대로다.

글=한경닷컴 최유리 기자, 사진=한경닷컴 변성현 기자 now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