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민원 숫자 감축에 매달리는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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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금융부 기자 selee@hankyung.com
1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기자실에서 고위 간부의 브리핑이 열렸다. 보험산업을 총괄하는 그의 브리핑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오늘은 ‘이렇게 하면 보험사들이 민원을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겠다’는 방안을 설명드리려 합니다. 5주 동안 태스크포스(TF)에서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결과입니다.”
미리 배포한 자료에는 보험서비스를 4단계로 구분해 민원 발생의 원인을 분석하고, 분야별로 마련한 65개의 대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 찬 그의 브리핑은 참석한 기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소비자 보호’라는 큰 지향점을 이탈해 민원 숫자를 줄이는 데만 치중한 인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TF가 가장 먼저 앞세운 민원 감축 방안은 ‘전자청약의 확대’였다. 보험회사가 태블릿PC 등을 통해 공인인증 후 전자서명 형태로 청약하면 민원 발생률이 일반청약의 7분의 1에서 20분의 1로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서면 청약은 설계사의 대필 논란을 부른다”며 “증권사에선 민원이 훨씬 적게 발생하는데, 이는 전자거래가 일반화돼 소비자들이 스스로 결정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전자거래를 하면 서명절차 등이 더 복잡한 만큼 자신이 계약하고도 ‘남 탓’을 하며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최수현 금감원장이 취임 직후 “보험 민원 건수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을 때는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 항의할 여지를 줄이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대책들도 대체로 비슷했다. ‘주요 상품내용에 대한 계약자의 확인 강화’, ‘본인인증·자필서명 확인 강화’, ‘완전판매 모니터링 실효성 제고’…. 계약의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음을 명확히 해서 분쟁을 방지하는 방안들이다. 보험가입자들의 계약 철회 권리나 항변할 권리를 보완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원 감축률로 보험회사를 평가하는 ‘민원감축지수’ 도입안도 브리핑에서 제시됐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민원 관리가 잘 돼 줄일 여지가 적은 회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민원 감축 TF’라는 이름에서부터 소비자가 아닌 감독기관 중심의 경직된 생각이 읽힌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금감원은 민원을 ‘왜’ 줄여야 하는지 잊은 것이 아닐까.
이상은 금융부 기자 selee@hankyung.com
미리 배포한 자료에는 보험서비스를 4단계로 구분해 민원 발생의 원인을 분석하고, 분야별로 마련한 65개의 대책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 찬 그의 브리핑은 참석한 기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소비자 보호’라는 큰 지향점을 이탈해 민원 숫자를 줄이는 데만 치중한 인상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TF가 가장 먼저 앞세운 민원 감축 방안은 ‘전자청약의 확대’였다. 보험회사가 태블릿PC 등을 통해 공인인증 후 전자서명 형태로 청약하면 민원 발생률이 일반청약의 7분의 1에서 20분의 1로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서면 청약은 설계사의 대필 논란을 부른다”며 “증권사에선 민원이 훨씬 적게 발생하는데, 이는 전자거래가 일반화돼 소비자들이 스스로 결정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전자거래를 하면 서명절차 등이 더 복잡한 만큼 자신이 계약하고도 ‘남 탓’을 하며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최수현 금감원장이 취임 직후 “보험 민원 건수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을 때는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어 항의할 여지를 줄이라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대책들도 대체로 비슷했다. ‘주요 상품내용에 대한 계약자의 확인 강화’, ‘본인인증·자필서명 확인 강화’, ‘완전판매 모니터링 실효성 제고’…. 계약의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음을 명확히 해서 분쟁을 방지하는 방안들이다. 보험가입자들의 계약 철회 권리나 항변할 권리를 보완하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민원 감축률로 보험회사를 평가하는 ‘민원감축지수’ 도입안도 브리핑에서 제시됐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민원 관리가 잘 돼 줄일 여지가 적은 회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민원 감축 TF’라는 이름에서부터 소비자가 아닌 감독기관 중심의 경직된 생각이 읽힌다”며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금감원은 민원을 ‘왜’ 줄여야 하는지 잊은 것이 아닐까.
이상은 금융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