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공무원 임용시험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국가 공무원을 뽑는 시험은 과거가 유일했다. 법제상으로는 천인만 빼고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지만 잡과를 제외한 문과와 그 예비시험인 생원, 진사시, 무과는 사정이 달랐다. 양반사회의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작용한 데다 오랜 기간 시험을 준비할 여력이 없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응시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모두가 여기에 목을 맨 것은 입신양명의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정조 24년에 치러진 과거 1차시험인 초시에는 11만여명이 몰렸다고 한다.

현대적인 의미의 국가공무원 채용 제도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듬해인 1949년에 시작됐다. 현재의 5·7·9급 공채와 같은 형태로 체계화된 것은 1961년부터였다. ‘고시’라는 이름의 5급 공채는 워낙 벽이 높아 대부분의 ‘공시족’은 7·9급 시험으로 몰렸다. 응시생이 늘고 경쟁이 치열해지자 학력 인플레가 일어났다. 9급 일반행정직 합격자 가운데 대학졸업자가 1988년 13.7%에서 1992년 56.5%로 늘더니 지난해에는 98.3%까지 치솟았다.

내일 치르는 올해 9급 공채 시험에 20만4698명이 몰려 사상 최대 인원을 기록했다고 한다. 지난해 15만7159명보다 30%(4만7539명)나 늘었고, 이 중 2738명을 선발한다니 경쟁률도 74.8 대 1이다. 2008년만 해도 49.1 대 1이던 9급 경쟁률은 2009년 58.7 대 1, 2010년 82.2 대 1, 2011년 93.3 대 1로 솟구쳤다가 지난해 72.1 대 1로 낮아진 뒤 올해 다시 올랐다. 가장 많은 응시자가 몰린 일반행정직은 655 대 1이나 된다.

지원자가 급증한 것은 고교 교과목을 선택과목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1%대까지 떨어졌던 고졸 합격자 비중이 다시 늘어날지 관심이다. 고졸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별’을 단 입지전적인 인물도 많다. 지자체 공무원 중에는 이의근 전 경북지사, 이원종 전 충북지사, 김태환 전 제주지사 등이 대표적이다. 9급 출신인 식약처의 장병원 국장도 최근 1급으로 승진해 화제를 모았다.

우리 같은 공무원 시험제도가 없는 미국에서는 필기보다 경력이나 인터뷰, 업무능력을 중시한다. 채용 시기도 일정하지 않아 연방정부나 주, 카운티, 시가 필요할 때마다 공고를 낸다. 예산 삭감 등으로 부득이하게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면 경력이 짧은 순서로 자른다. 연공서열에 따라 때가 되면 승진하는 우리와는 다르다.

이왕이면 ‘공시 열풍’에 동참한 우리 젊은이들이 창의력과 유연성을 발휘하며 다른 나라 공무원들보다 유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별’까지 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젠 ‘철밥통’ 소리 안 들을 때도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