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 꺼낸 차석용 부회장 "LG생건, 야무지게 일해라"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60)은 잘나가는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CEO를 맡고 난 뒤 매출이 32분기(8년) 연속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분기에도 사상 최고 실적을 올렸다.

그런 차 부회장이 25일 전 임직원이 모이는 분기행사인 ‘LG생활건강 컴퍼니 미팅’에서 심각한 경고 신호를 보냈다. “앞으로 5년은 지속될 경기 불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과 비교해 좋을 것 하나 없다. 비교 대상은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고 했다.

○‘최고 실적’보다 ‘위기’ 강조

'칼의 노래' 꺼낸 차석용 부회장 "LG생건, 야무지게 일해라"
차 부회장은 전 임직원이 보는 가운데 2분기 실적 그래프를 대형 화면에 띄웠다. 올 4~6월 매출 1조755억원, 영업이익 1202억원이 기록돼 있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9.6%, 영업이익은 14.4% 늘어난 사상 최고 실적이다. 상반기 전체 매출은 2조1478억원으로 2조원을 처음 넘어섰다.

그는 “LG생건에 처음 왔을 때(2005년) 1년 매출이 1조원이었는데 이제 한 분기에 1조원을 기록하는 회사가 됐다”며 “어려운 환경에서 이런 실적을 낸 여러분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을 시작했다.

그러나 차 부회장은 “업계 전반의 사업환경을 객관적으로 말씀드리면 굉장히 어렵다”며 위기론을 꺼냈다. 가장 좋은 실적을 냈지만, 그보다는 위기에 더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LG생건의 경영여건이 힘들다고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가장 큰 요인은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화장품업계의 불황이) 가을쯤 되면 괜찮아지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적어도 5년은 갈 것”이라며 “심각한 문제가 진행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불황에 엔저·날씨까지 악재”

환율 문제도 지적했다. 엔저 현상 때문에 화장품 매출의 상당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일본 관광객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차 부회장은 “일본 관광객들이 같은 돈을 들고 와도 구매력이 감소하기 때문에 외식뿐 아니라 쇼핑도 줄이고 있다”며 “환율이 무섭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밀어내기’와 같은 갑(甲)·을(乙) 논란이 확산하고 있는 점도 경영여건을 불투명하게 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대리점뿐 아니라 대형마트조차 ‘우리도 을’이라며 물건을 적게 받아가고 재고를 줄이려 한다”며 “생산업체로선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1980년 이후 30여년 만에 가장 긴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며 “우리 회사는 올 들어 기후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날씨가 흐리면 LG생건 3대 사업(화장품·생활용품·음료)의 한 축인 음료 사업이 타격을 받는다. 실제로 올 들어 저온 현상, 이른 장마 등 이상기후가 이어지면서 LG생건의 2분기 음료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 성장에 그쳤다.

○하반기 키워드 ‘야무지게’

차 부회장은 대형 화면에 ‘야무지다’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보여주면서 “어려운 상황을 야무지게 견뎌내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번 휴가 때 김훈 작가의 소설 ‘칼의 노래’를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순신 장군이 자신에게 닥친 시련을 현명하게 이겨낸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차 부회장은 “우리 회사는 투자자로부터 매출은 15%, 영업이익은 20%씩 늘어야 한다는 기대를 받는 회사”라며 “주주와 소비자를 위해 우리 모두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 인터뷰 등을 잘 하지 않는 차 부회장은 20여분 동안 농담을 섞어가며 자유 발언을 이어갔다.

이날 행사에선 연수를 받고 있는 LG생건 신입사원들이 춤을 추며 찍은 뮤직비디오가 상영됐다. 영상이 끝난 뒤 차 부회장은 “지금은 굉장히 좋아보이죠? 입사하면 힘든 일이 많을 텐데…”라고 농담을 던져 행사장에 폭소가 터졌다.

또 “신문에 엄청 부자라고 나오면서 아무 걱정이 없는 사람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해 또 한번 폭소가 터졌다. 차 부회장은 최근 발표된 ‘전문경영인 주식부자 순위’에서 1위에 올랐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