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아직도 경제성장을 기대하시는지…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제조업 탈출 불렀던 87년 체제
경제민주화는 2차 이탈 부를 것
자본의 파업, 성장정체가 목전에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경제민주화는 2차 이탈 부를 것
자본의 파업, 성장정체가 목전에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20년째 추세적 하락이다. 노태우 정권의 8.6%는 김영삼 7.4%, 김대중 5%, 노무현 4.3%로 내려앉았다. 이명박 정권은 2.9%였다. 그것도 마지막 분기는 0%였다. 남아 있던 일말의 기대치마저 버린 추락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박근혜 정부의 성장률은 오는 4분기의 일시 회복에도 불구하고 잘해야 2% 이하다. 이런 낮은 성장률로는 70% 고용률과 국민행복 등이 모두 허공에 뜨고 만다. 그래프 분석가들은 경제성장률이 원형 천장을 형성한 다음 이미 장기 하락추세에 들어섰다는 것을 금세 알아챈다. 박근혜 정부 다음 정권의 성장률은 필연적으로 제로다. 그 다음은?
일본형 장기불황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솔직히 말해 언감생심이다. 일본은 독일과 함께 지금도 제조업이 세계 최강이다. 일본의 제조업 근로자는 아직도 전체 근로자의 16%인 998만명이다. 1000만 제조업 기술자들이 버티는 나라다. 한국은 겨우 400만이다. 돌아보면 성장률 하락은 87체제가 그 출발점이다. 87체제는 전투적 노조의 탄생, 파괴적 노동쟁의 확산, 노조의 권력화를 골자로 하는 제1차 경제민주화를 만들어냈다. 흥분한 시위대가 사장의 목에 밧줄을 걸어 개처럼 끌고 다니고, 울산시청이 불타오르며, 화염병이 난무하면서 제조업의 탈출, 다른 말로 제조업 공동화가 시작됐다. 임금은 당연한 듯 생산성을 초과했다.
공장들의 해외이전은 1990년 이후 매년 10억달러를 넘어섰고 2000년에는 드디어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건수로는 100건 단위에서, 1990년대가 되면서 1000건 단위를 넘어섰다. 제1차 엑소더스는 제조업의 붕괴였다. 제조업 해외 탈출은 불과 5~6년여 만에 외환위기를 불렀다. 이게 1997년 외환위기의 진정한 정치경제학적 원인이다. 그러나 정부와 좌익 강단은 교묘한 레토릭으로 재벌에 그 책임을 모두 뒤집어 씌웠다. 어떻든, 제조업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꾸역꾸역 골목상권으로 흘러들면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취업자 구성비 28%인 골목길 자영업은 그렇게 태어났다.
이게 노동을 내세운 1차 경제민주화의 결과다. 이제 비탄에 휩싸인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2차 경제민주화를 한다는 것이다. 화형에 처해질 마녀는 지금도 대기업이다. 그리고 결론도 같다. 필시 2차 엑소더스가 나타날 것이다. 최근 수년간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더욱 극적으로 늘어나 매년 100억달러를 간단하게 넘기고 있다. 작년까지 해외투자 총액은 2200억달러였다. 올해 기업들은 4조원 이상이나 국내자산을 팔아치웠다. 벌써 작년의 세 배다. 이들은 해외로 나가거나 사업을 접을 것이다. 이른바 자본의 파업이다. 경제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이 불법으로 선언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에 직면하게 되며 줄줄이 감옥행을 기다리는 기업가들이 무엇을 위해 투자를 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투자하면 업어주겠다고 말하지만 합법적으로 투자하기도 어려운 것이 한국의 법적 환경이다. 말씀은 고맙지만 정중한 사양이다.
나라의 진로에도 일종의 운명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3년간 지구촌을 휩쓴 외환위기는 멕시코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을 주저앉혔다. 2차 대전 이후 운명을 바꾸는 데 성공한 1차 우등생들의 침몰이었다. 최근의 경제위기는 2군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브릭스 국가군을 초토화시킨다. 브라질은 벌써 몇 번째다. 일본은 제로성장으로 버텨냈지만 기초가 허약한 한국은 현상유지도 언감생심이다. 앞으로 달려나가지 못하면 필시 넘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분배 경제를 말한다. 분배가 성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흰소리를 하는 사람도 많다. 소비성향 운운하면서 복지가 내수를 촉진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유리창을 깨고 갈아끼우면서 국민소득이 늘었다고 계산하는 것과 같다. 다른 곳에 투자할 돈이 그만큼 줄어든 것은 계산하지 않는 돼지들의 셈법이다. 주말 울산에 출현한 전문 폭력단이 그렇게 무너뜨리지 못해 안달인 것이 현대자동차만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의 경제적 번영을 무너뜨려 자신의 착오적 이념을 증명하려는 싸구려 혁명가들이다. 그런 자들이 강단과 방송가를 장악하고 있다. 바로 죽음에의 충동, 네크로필리아(necrophillia)다. 그렇게 2차 경제민주화가 막을 올렸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일본형 장기불황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솔직히 말해 언감생심이다. 일본은 독일과 함께 지금도 제조업이 세계 최강이다. 일본의 제조업 근로자는 아직도 전체 근로자의 16%인 998만명이다. 1000만 제조업 기술자들이 버티는 나라다. 한국은 겨우 400만이다. 돌아보면 성장률 하락은 87체제가 그 출발점이다. 87체제는 전투적 노조의 탄생, 파괴적 노동쟁의 확산, 노조의 권력화를 골자로 하는 제1차 경제민주화를 만들어냈다. 흥분한 시위대가 사장의 목에 밧줄을 걸어 개처럼 끌고 다니고, 울산시청이 불타오르며, 화염병이 난무하면서 제조업의 탈출, 다른 말로 제조업 공동화가 시작됐다. 임금은 당연한 듯 생산성을 초과했다.
공장들의 해외이전은 1990년 이후 매년 10억달러를 넘어섰고 2000년에는 드디어 100억달러를 돌파했다. 건수로는 100건 단위에서, 1990년대가 되면서 1000건 단위를 넘어섰다. 제1차 엑소더스는 제조업의 붕괴였다. 제조업 해외 탈출은 불과 5~6년여 만에 외환위기를 불렀다. 이게 1997년 외환위기의 진정한 정치경제학적 원인이다. 그러나 정부와 좌익 강단은 교묘한 레토릭으로 재벌에 그 책임을 모두 뒤집어 씌웠다. 어떻든, 제조업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꾸역꾸역 골목상권으로 흘러들면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취업자 구성비 28%인 골목길 자영업은 그렇게 태어났다.
이게 노동을 내세운 1차 경제민주화의 결과다. 이제 비탄에 휩싸인 중소기업과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2차 경제민주화를 한다는 것이다. 화형에 처해질 마녀는 지금도 대기업이다. 그리고 결론도 같다. 필시 2차 엑소더스가 나타날 것이다. 최근 수년간 기업들의 해외투자는 더욱 극적으로 늘어나 매년 100억달러를 간단하게 넘기고 있다. 작년까지 해외투자 총액은 2200억달러였다. 올해 기업들은 4조원 이상이나 국내자산을 팔아치웠다. 벌써 작년의 세 배다. 이들은 해외로 나가거나 사업을 접을 것이다. 이른바 자본의 파업이다. 경제활동의 거의 모든 영역이 불법으로 선언되고 징벌적 손해배상에 직면하게 되며 줄줄이 감옥행을 기다리는 기업가들이 무엇을 위해 투자를 한다는 말인가. 대통령은 투자하면 업어주겠다고 말하지만 합법적으로 투자하기도 어려운 것이 한국의 법적 환경이다. 말씀은 고맙지만 정중한 사양이다.
나라의 진로에도 일종의 운명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3년간 지구촌을 휩쓴 외환위기는 멕시코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등을 주저앉혔다. 2차 대전 이후 운명을 바꾸는 데 성공한 1차 우등생들의 침몰이었다. 최근의 경제위기는 2군 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브릭스 국가군을 초토화시킨다. 브라질은 벌써 몇 번째다. 일본은 제로성장으로 버텨냈지만 기초가 허약한 한국은 현상유지도 언감생심이다. 앞으로 달려나가지 못하면 필시 넘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분배 경제를 말한다. 분배가 성장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흰소리를 하는 사람도 많다. 소비성향 운운하면서 복지가 내수를 촉진할 것처럼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유리창을 깨고 갈아끼우면서 국민소득이 늘었다고 계산하는 것과 같다. 다른 곳에 투자할 돈이 그만큼 줄어든 것은 계산하지 않는 돼지들의 셈법이다. 주말 울산에 출현한 전문 폭력단이 그렇게 무너뜨리지 못해 안달인 것이 현대자동차만이 아니다. 그들은 한국의 경제적 번영을 무너뜨려 자신의 착오적 이념을 증명하려는 싸구려 혁명가들이다. 그런 자들이 강단과 방송가를 장악하고 있다. 바로 죽음에의 충동, 네크로필리아(necrophillia)다. 그렇게 2차 경제민주화가 막을 올렸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