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용 LG전자 스타일러 개발팀 수석연구원이 스타일러 개발 과정과 성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박혜용 LG전자 스타일러 개발팀 수석연구원이 스타일러 개발 과정과 성능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가구들 사이에 가전이 놓였다. 옷 냄새를 없애고 구김을 다려주는 옷장이다. LG전자가 2011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스타일러(Styler)’ 얘기다.

지난 12일 찾은 경남 창원 성산동 LG전자 2공장. 이곳의 주요 생산품은 세탁기다. 9초에 한 대씩 완성품이 나오는 일명 ‘9초 라인’에서 만드는 제품은 드럼세탁기, 전자동세탁기, 미니세탁기 등 종류도 다양했다. 스타일러는 8개의 세탁기 라인 한쪽 끝, 3분의 1 길이의 미니라인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스타일러는 의류관리기다. 양복이나 니트처럼 자주 입지만 세탁하기 힘든 옷을 걸어두면 구김을 제거하고 냄새와 세균도 없애준다.

근로자들이 50m 남짓한 생산라인 위에서 열교환기 조립 작업과 열을 전달하는 구리 연결 부분의 누설검사를 하고 있었다. 이어 제품 외관을 다듬고 문을 조립했다. 스타일러는 LG전자 가전기술의 총집합체로 불린다. 살균을 위해 증기를 내뿜는데, 에어컨과 냉장고의 컴프레서(압축기) 기술이 적용됐다. 잔주름을 펴기 위해서는 세탁기의 진동 기술을 활용했다.

스타일러의 존재는 특별하다. 기존 기술력을 조합해 전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구본무 LG 회장은 지난 5월 임원세미나에서 “우리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는 상품을 만들어 내자”고 강조했다. 구 회장의 말대로 LG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대표적인 제품이 스타일러다.

2006년부터 스타일러 개발팀을 이끌고있는 박혜용 수석연구원은 “김치냉장고가 처음 나왔을 때도 냉장고가 있는데 누가 따로 사겠느냐는 지적이 많았다”며 “스타일러가 앞으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일러가 탄생하기까지는 어려움도 많았다. ‘세탁·다림 기능을 가진 의류관리기’로 개념을 정리한 뒤에도 제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비교 대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크기와 모양을 정하기 위해 수많은 집안 구조와 옷의 종류를 검토해야 했다. 스팀으로 악취와 세균을 없앤 뒤엔 다림질이 문제였다. 눌러 펴는 힘을 줄 수 없어서였다. 박 연구원은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 주부들이 빨래를 널기 전에 한 번씩 털어주는 동작에 있었다”며 “분당 220회의 진동으로 옷감 손상 없이 빠른 주름 제거가 가능했다”고 떠올렸다.

다양한 고급 옷감과 의류들을 테스트하기 위해 옷값으로만 수억원을 들였다. 옷감만큼 다양한 냄새 제거를 시험하기 위해 악취를 모으는 것도 고역이었다. 팀원들은 숯불갈비식당에서 회식한 동료의 옷을 수거해오는가 하면 담배 냄새를 배게 하려고 당구장처럼 흡연자가 많은 곳을 한참 서성거리기도 했다. LG전자가 스타일러와 관련해 확보한 기술 특허만 160건에 이른다.

4년6개월간 갖은 고생 끝에 탄생시킨 ‘작품’이기에 스타일러에 거는 기대도 크다. 값이 200만원에 달하지만 올 상반기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35% 늘었다. 작년부터 중국에서 판매를 시작하는 등 해외 시장도 공략하고 있다. 회사 측은 앞으로 5년 안에 판매량이 3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출시된 지 2년을 넘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경쟁자다. 박 연구원은 “다른 가전업체들도 스타일러 시장에 뛰어들어 함께 파이를 키워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써보고 유용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필수 가전제품으로 자리잡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창원=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