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증시가 죽어 간다…'쿼드러플 좀비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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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기능과 활력 잃은 지 오래…기업 뛰어 놀 수 있는 환경 조성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흔히들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른다. 꽃은 활짝 피어야 아름답고, 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준다. 경제학에서 ‘외부경제’를 설명할 때 꽃밭을 자주 예로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을 감안하면 꽃밭을 만들 때 드는 사적(私的) 비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증시가 살아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증시가 활기를 잃어버린 지는 오래됐다. 시장만이 아니라 증권사, 증권인 그리고 증시 관련 모든 이해관계자가 죽어가고 있다. 이른바 ‘한국 증시의 쿼드러플 좀비화’ 현상이다. 이제는 투자자들마저 증시를 외면하는 ‘노마드’ 현상까지 일고 있다.
여러 원인이 겹쳐 있다. 증시의 3대 구성 요소인 돈과 기업, 투자자가 이런저런 명목이 붙은 규제로 뛰어놀지 못하고 있다. 인사와 감독권을 가진 기관들에 권한이 집중되는 ‘빅 브러더’ 현상도 심해지는 추세다.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 수익을 내주지 못하고 있는 증권사와 증권인도 문제다.
그중에서 한국 증시의 고질병으로 지적된 외국 자본의 지배 문제인 ‘윔블던 효과’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나타난다. 윔블던 효과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영국 금융회사 소유주가 영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현상을 가리킨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처럼 단기간에 외국인 비중이 높아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들어 더 심해지는 추세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40%를 넘어섰다. 외국인 순매수와 코스피지수 간의 상관계수도 0.7 내외 수준(‘1’에 가까울수록 같이 움직인다는 뜻)까지 높아졌다. 그만큼 외국인의 영향력이 높다는 의미다.
이론적으로 최근과 같은 포트폴리오 성격 위주의 외국 자본 확대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 서비스 개선 △금융제도 및 감독 기능의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는다. 영국은 1986년 ‘금융 빅뱅’을 단행한 이후 초기 단계에서 윔블던 효과가 크게 우려됐지만, 갈수록 순기능이 나타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발전단계에 비해 외국인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우려된다. 외국 자본이 한국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해 국부 유출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외국 자본 확대 과정에서 국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뉴질랜드의 ‘키위 뱅크’와 같은 별도의 금융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정책 무력화도 우려된다. 외국 자본이 금융 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외국 자본이 늘어난 만큼 우리의 경제 주권이 약해진다는 의미와 같다. 국제사회에서 금융위기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 체제에 빗대 윔블던 효과를 ‘제2의 경제신탁통치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글로벌 펀드들이 벌처펀드형 투자,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가 심해짐에 따라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고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심하다. 이 밖에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 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이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
한국처럼 역기능이 더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윔블던 효과’부터 해결하는 것이 한국 증시가 활기를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다. 많은 과제 가운데 아직도 잔재해 있는 한국 정부의 외자 선호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과다 외환 보유액이 논란이 되는 만큼 앞으로 외자 정책은 한국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자 유입 정도에 비례해 국내 자본의 육성,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 곳곳에 만연한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 간의 역차별 요소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국민연금 등이 운용주체 선정 과정에서 외국사가 포함되면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생각하고, 국내 금융사가 포함되면 불안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경제주체들이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는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는 자세만 있다면 최근과 같은 ‘윔블던 효과’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투자자들이 그런 자세를 가져야 외국 자금의 순기능을 십분 누릴 수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주권이 어느 정도 확보된 상황에서 우리 증시가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돈과 기업, 그리고 투자자가 맘대로 뛰어놀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규제를 풀고 인사와 감독권은 시장에 맡겨 놓는 것이 관건이다. 증권사와 증권인도 본업에 충실하고 경쟁력을 갖춰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 수익을 내줘야 하는 과제도 뒷받침돼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한 나라의 증시가 살아나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증시가 활기를 잃어버린 지는 오래됐다. 시장만이 아니라 증권사, 증권인 그리고 증시 관련 모든 이해관계자가 죽어가고 있다. 이른바 ‘한국 증시의 쿼드러플 좀비화’ 현상이다. 이제는 투자자들마저 증시를 외면하는 ‘노마드’ 현상까지 일고 있다.
여러 원인이 겹쳐 있다. 증시의 3대 구성 요소인 돈과 기업, 투자자가 이런저런 명목이 붙은 규제로 뛰어놀지 못하고 있다. 인사와 감독권을 가진 기관들에 권한이 집중되는 ‘빅 브러더’ 현상도 심해지는 추세다.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 수익을 내주지 못하고 있는 증권사와 증권인도 문제다.
그중에서 한국 증시의 고질병으로 지적된 외국 자본의 지배 문제인 ‘윔블던 효과’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나타난다. 윔블던 효과란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주최국인 영국 선수보다 외국 선수가 더 많이 우승하는 것처럼 영국 금융회사 소유주가 영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현상을 가리킨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처럼 단기간에 외국인 비중이 높아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들어 더 심해지는 추세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대에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40%를 넘어섰다. 외국인 순매수와 코스피지수 간의 상관계수도 0.7 내외 수준(‘1’에 가까울수록 같이 움직인다는 뜻)까지 높아졌다. 그만큼 외국인의 영향력이 높다는 의미다.
이론적으로 최근과 같은 포트폴리오 성격 위주의 외국 자본 확대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순기능으로는 △금융 서비스 개선 △금융제도 및 감독 기능의 선진화 △대외신인도 제고 등을 꼽는다. 영국은 1986년 ‘금융 빅뱅’을 단행한 이후 초기 단계에서 윔블던 효과가 크게 우려됐지만, 갈수록 순기능이 나타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중심지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발전단계에 비해 외국인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우려된다. 외국 자본이 한국 경제와 함께 발전하는 공생적 투자가 되지 못해 국부 유출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외국 자본 확대 과정에서 국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뉴질랜드의 ‘키위 뱅크’와 같은 별도의 금융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제 정책 무력화도 우려된다. 외국 자본이 금융 수익을 최우선시함에 따라 정부 정책에 비협조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외국 자본이 늘어난 만큼 우리의 경제 주권이 약해진다는 의미와 같다. 국제사회에서 금융위기국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 체제에 빗대 윔블던 효과를 ‘제2의 경제신탁통치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업 경영권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글로벌 펀드들이 벌처펀드형 투자,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능동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추세가 심해짐에 따라 종전과 같은 수준의 외국인 비중이라고 하더라도 기업이 느끼는 경영권 위협 정도는 더 심하다. 이 밖에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켜 신용 불량, 자살 등 사회병리 현상이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
한국처럼 역기능이 더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윔블던 효과’부터 해결하는 것이 한국 증시가 활기를 되찾기 위한 첫걸음이다. 많은 과제 가운데 아직도 잔재해 있는 한국 정부의 외자 선호 정책부터 바뀌어야 한다. 이제는 과다 외환 보유액이 논란이 되는 만큼 앞으로 외자 정책은 한국 경제의 공생적 투자가 될 수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외자 유입 정도에 비례해 국내 자본의 육성,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제도 곳곳에 만연한 외국 자본과 국내 자본 간의 역차별 요소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 국민연금 등이 운용주체 선정 과정에서 외국사가 포함되면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생각하고, 국내 금융사가 포함되면 불안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경제주체들이 글로벌 시대에 있어서는 한국계 자금만 따지는 ‘은둔의 왕국’적인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하겠지만, 우리 경제가 어려울 때는 언제든지 백기사가 된다는 자세만 있다면 최근과 같은 ‘윔블던 효과’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투자자들이 그런 자세를 가져야 외국 자금의 순기능을 십분 누릴 수 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주권이 어느 정도 확보된 상황에서 우리 증시가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돈과 기업, 그리고 투자자가 맘대로 뛰어놀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해야 한다.
규제를 풀고 인사와 감독권은 시장에 맡겨 놓는 것이 관건이다. 증권사와 증권인도 본업에 충실하고 경쟁력을 갖춰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 수익을 내줘야 하는 과제도 뒷받침돼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