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
갤러리현대, 70여점 전시
김환기 탄생 100년을 맞아 갤러리현대가 오는 30일까지 종이에 그린 그의 유화 작품 세계를 종합적으로 살피는 대규모 회고전(Works on paper)을 연다. 서울 사간동 신관 전시장에는 김 화백이 뉴욕 화단에서 활동했던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일기를 쓰듯 작업한 작품 70여점이 걸렸다.
전남 신안에서 태어난 김 화백은 한국 모더니즘 미술 제1세대로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해 구상과 추상을 통해 독창적인 한국미를 선보였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16시간 이상 작업에 몰두한 것으로 전해지는 그는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1000여점의 그림을 남겨 ‘한국의 피카소’라고 불린다.
생활이 궁핍했던 김 화백은 미국 뉴욕에 있던 시기에 이중섭이 담배 종이에 그림을 그렸듯이 한지나 신문지 보드 갱지 공책 포장지 등 다양한 종이 재료를 활용해 그림을 그렸다. “예술(창조)은 하나의 발견이다. 늘 조심할 것은 상식적인 안목에 붙잡히는 것이다. 항상 새로운 눈으로, 처음 뜨는 눈으로 작업할 것”이라고 한 그의 말 그대로였다.
당시 종이 작품은 1950년대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 작품과는 달리 물성 자체를 즐기며 조형미를 추구한 게 특징이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면서 샘처럼 솟아나온 빛깔과 질감 형태 구성의 하모니를 살려내 유명한 유화 ‘점화’시리즈를 탄생시키는 발판이 됐다.
미국 비평가 배리 슈바프스키는 “사람들은 김환기의 종이 작업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 작업은 깨끗하지 않은 재료인 신문지에 그려졌는데, 그림에 스미는 인쇄의 흔적들이 물감과 표면을 고정시킨다”며 “물감이 표면으로 침투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평했다.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라고 했던 그는 죽기 직전까지도 종이의 매력에 빠져 한민족의 정서에 바탕을 둔 그림을 그렸다. 전시작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1968년작 점화 ‘무제’다. 시인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 나오는 시구를 제목으로 붙인 1970년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바탕이 된 작품이다. 뉴욕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푸른색 필치로 묘사하며 한국의 하늘과 동해를 상징적으로 그렸다. 1970년대에 그린 또 다른 점화 ‘무제’시리즈도 완성도 높은 말년의 수작이다.
반추상화도 여러 점 나온다. 해와 달, 집, 길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작품들은 한국인의 영혼을 은은한 백의민족의 빛으로 물들인 것. 선과 점들이 교차하는 바탕을 배경으로 해가 떠 있고 그 일부를 나뭇가지로 가려 시적인 정조를 자아낸다.
김 화백의 종이 작품이 관람객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 수묵화에서 느껴지는 발묵 효과 때문이라는 게 미술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조정열 갤러리현대 대표는 “김 화백의 종이 작품은 물기를 흡수해 마르면서 마치 다듬질한 것처럼 팽팽해지고 안료의 색상이 빛난다”며 “수묵과 채색의 발묵 효과와 선묘가 지닌 표정을 섬세하게 운용해 종이의 질감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