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래 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장이 10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경영관에서 홀인원패를 들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김익래 전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장이 10일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 경영관에서 홀인원패를 들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골프는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는 신뢰의 스포츠입니다. 골프와 인생에서 신뢰를 쌓으니 고객이 늘어 회계법인 대표도 되고, 회계사로서 한 회사에서 42년 동안 최장 근속 기록을 세울 수 있었죠.”

회계사 경력 44년, 골프 구력 34년의 김익래 전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회장(69)은 자신의 좌우명인 ‘신뢰’를 골프 철학으로 내세웠다. 지난해 현직에서 물러난 뒤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 전 회장을 10일 서울 명륜동캠퍼스 경영관에서 만났다.

“골프는 혼자 하는 운동이다보니 신뢰가 생명입니다. 공을 손으로 건드려선 안 되죠. 아마추어 골퍼들은 라이가 좋지 않으면 공을 살짝 옮기기도 하는데 이는 룰에 어긋난 겁니다. 룰대로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신뢰가 최고 덕목인 회계사란 직업과 잘 맞겠다고 생각해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골프를 통해 신뢰를 쌓는 훈련을 한 거죠.”

1969년 회계사 생활을 시작한 김 전 회장은 세정회계법인을 공동 설립(1970년)하고, 1977년 대표이사가 된 뒤 1979년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았다. 회사는 합병에 합병을 거듭해 세동회계법인(1983년), 안진회계법인(1999년)으로 규모가 커졌다. 김 전 회장은 법인의 대표이사로서 골프를 통해 주변 사람들과 친교를 다졌다. 현재 골프 핸디캡은 15. 베스트스코어는 75타다. 스스로 엄격한 룰을 지키면서도 한때 70대 스코어를 주로 쳤던 실력파다.

‘신뢰’라는 골프 철학을 일상에서도 철저히 지키자 회계사로서 일도 잘 풀렸다.

“199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AMP) 동기 한 사람이 대출을 부탁하길래 상호신용금고 사장인 친구를 소개해줬습니다. 그 동기가 2억원을 빌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갚지 못하게 됐더군요. 당시 골프장 회원권을 팔고 적금을 깨 2억원 넘는 돈을 대신 갚았습니다. 서류상 보증을 선 것도 아니었는데 소개해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신뢰를 지킨 거죠.”

이 일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김 전 회장은 믿을 만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서울대 AMP 기금을 비롯해 최고산업전략과정(AIP) 기금의 관리를 맡는 등 일감이 쏟아져들어왔다. 김 전 회장은 “신뢰가 쌓이면서 주위에서 일을 수시로 소개해줘 고객이 계속 늘어났다”며 “일거리를 많이 만들어오니 대형 회계법인에서 대표도 할 수 있었고 정년이 지나고 나서도 8년 더 일할 수 있었다”고 했다.

골프는 가족 사이 대화수단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30년 전 무릎 관절에 통증을 느끼고 있던 아내에게 운동으로 골프를 권유했고 지금도 1주일에 한두 번 아내와 함께 라운딩을 나가 운동도 하고 못다한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는 “아내 아들 사위와도 종종 골프장에 나간다”며 “골프는 이제 가족 전체가 즐기는 운동”이라며 즐거워했다.

김 회장은 홀인원을 네 번이나 기록했다. 첫 번째 홀인원은 1992년 리베라CC 15번홀에서 아내와 함께 라운딩하던 중 나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홀인원은 네 번째. 2009년 10월 180여명이 참여한 성균관대 총동문회 골프대회가 열린 골드CC 2번홀에서 공이 땅을 맞지 않고 직접 홀로 빨려들어가는 짜릿한 홀인원을 낚았다. 김 전 회장은 “홀인원 선물로 180여명에게 무엇을 준비할까 고심하다 성균관대장학재단에 3000만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골프 인생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은퇴한 뒤 드라이버 거리가 240야드로 은퇴 전에 비해 조금 늘었는데 수영 등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이 더 좋아진 모양”이라며 웃었다.

“한국 나이 70세에 골프로 건강을 가꾸면서 모교에서 후배를 양성하며 살고 있습니다. 현재 10여개 비영리법인에서 감사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동안 회계사로서 쌓아온 재능을 필요한 곳에 기부하며 행복하게 살아야죠.”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