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면 머리 나빠진다.” “게임만 하더니 성격이 나빠졌구나.”

게임에 몰입한 청소년들이 종종 듣는 핀잔이다. 국내에서 게임은 ‘하위 문화’로 홀대받으며 역기능이 강조돼왔다.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주범으로 몰리고,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적용되는 이유도 게임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에서 비롯된다. 게임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들을 살펴봤다.

(1) 게임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한 분야일 뿐이다?

‘총 제작비 500억원에 제작기간 6년의 대작.’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다. 엔씨소프트가 내놓은 국내 온라인 게임 ‘블레이드&소울’ 얘기다. 게임 산업은 분류상으로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한 갈래에 속하지만 단순 소프트웨어 하위업종으로 치부할 수 없는 첨단 문화콘텐츠 산업이다. 게임업체 넥슨 관계자는 “대작 온라인 게임은 웬만한 영화 제작비에 달하는 몇 백억원이 개발비로 투입되는 경우가 숱하다”며 “수백명의 개발인력이 4년 이상 달라붙어 만드는 거대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실제로 게임의 해외 실적은 눈부시다. 2011년에 이어 지난해도 콘텐츠 산업 가운데 수출액 1위를 차지해 ‘콘텐츠 한류’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게임산업은 지난해 전체 콘텐츠 수출액 48억달러 중 27억달러(58.2%)를 차지했다.

성공하면 연간 수십억원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릴 수 있어 국가에서 반드시 성장시켜야 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산업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1998년 서비스를 시작한 ‘리니지’는 지난해 22만명의 동시접속자수 신기록을 세우며 2조원에 가까운 누적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게임 내 경제’가 활성화돼 운영·업데이트하는 것만으로도 고스란히 매출로 돌아오는 것이다. 남영 한양대 교수는 “국내 벤처가 주축이 된 한국 게임 산업은 국제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라며 “문화와 기술의 접점에 있는 기회의 산업”이라고 말했다.

(2) 게임을 하면 폭력적으로 변해?

미국 컬럼바인고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은 2001년 이드소프트웨어, 닌텐도 미국지사, 세가 미국지사 등 사격게임 ‘둠’의 제작사와 공급사 25곳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1999년 콜로라도주 컬럼바인고에서 13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에 게임이 결정적 영향을 줬다는 주장이었다. 근거로는 이 학교 3학년이었던 사건의 범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가 난사에 사용한 엽총을 둠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름을 따서 ‘알린(Arlene)’이라고 부른 비디오테이프를 제시했다.

이후 미국 조지아텍 총기난사 사건, 국내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등 국내외에서 게임이 범죄의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직접적 인과관계를 단정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최태영 대구가톨릭대병원 교수는 지난해 2월 게임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콘퍼런스 ‘청소년과 게임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학교폭력과 게임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 미디어와 폭력에 대한 상관관계 연구는 진행 중”이라며 “복합적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게임이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것은 섣부르다”고 했다.

2002년 제작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컬럼바인’은 컬럼바인고에서 총탄을 900발이나 난사한 범인들의 반사회성을 폭력성 짙은 게임이 아닌 사회 구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미국 사회 근저에 깔린 인종차별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게임문화재단과의 인터뷰에서 “1997년 일진회 사건 당시 ‘만화’가 여러 요인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만화 매체 전체가 비난을 받았다”며 “게임에만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구조적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3) 게임하면 머리 나빠진다?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은 전두엽의 발달이 늦어져 모든 일에 반사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짐승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일본의 뇌신경학자 모리 아키오의 주장이다. 2003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의 책 ‘게임뇌의 공포’에 따르면 △게임을 하면 두뇌가 치매 상태와 비슷하게 변하고 △인성을 담당하는 전두엽 전부피질 기능이 저하되며 △도파민 신경계의 지속적인 자극으로 형성된 쾌감내성이 두뇌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하지만 게임이 두뇌 기능 저하를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모리 교수의 주장은 일본 내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과학적인 절차에 따라 실험이 이뤄지지 않았고, 게임과 스포츠 활동 시 뇌파를 서로 비교하면서 스포츠만 좋은 것으로 해석하는 등 객관적인 근거로 활용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와시마 류타 토호쿠대 교수는 “게임 뇌라는 것은 미신이나 단순한 망상과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오히려 게임이 머리를 좋게 한다는 의학계 주장도 나왔다. ‘2013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게임과 뇌과학’을 주제로 강연한 한덕현 중앙대 의대 교수는 “게임을 통한 시청각 자극으로 뇌 기능이 향상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스포츠 주치의로 일했던 그는 “프로게이머와 게임 중독자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촬영해 비교하면 확연히 다르다”며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거듭한 프로게이머의 전두엽이 발달한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훈련 등에 쓰이는 기능성 게임의 활용도도 주목받고 있다. 미국 육군에서 홍보용으로 개발한 ‘아메리카스 아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분쟁 게임 ‘피스메이커’ 등 기능성 게임은 가상 환경을 게임을 통해 체험해봄으로써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