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군 도약 '軍 3.0 시대'] "기업에서 軍 '현장 중심 혁신활동' 배웁니다"
해군 군수사령부에서 함정 정비를 맡고 있는 박인혁 서기관(56)은 작년까지만 해도 가스터빈엔진이 고장 나면 민간 방산업체에 수리를 맡기는 게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30여년간 군 정비분야에서 일해 온 예비역 중사 출신 군무원이지만 핵심 동력장치인 가스터빈엔진에 결함이 생기면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 훈련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기 일쑤였다. 고민 끝에 박 서기관은 지난해 여름부터 동료들과 함께 정비기술 연구에 들어갔다. 6개월에 걸친 노력 덕분에 올해 초 가스터빈엔진 정비 기술을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결함 건당 10억원의 비용을 줄였다. 함정 가동률도 높여 전투력 향상에 기여했다.

해군 군수사가 가스터빈엔진 정비 기술을 개발하는 데 지난해 도입한 BSC(Balanced Score Card) 성과관리체계가 큰 도움이 됐다. BSC란 재무적 성과와 업무 방식 개선 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기업의 성과 측정 기법이다. 해군 군수사는 복무 체계를 임무 중심에서 성과 중심으로 전면 개편했다. 함정 정비라는 임무에서 한 단계 건너뛰어 ‘정비 기간 10일 단축, 비용 10% 절감’ 등과 같은 계량화한 목표를 주고 성과를 평가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146억원의 비용을 절감, 국군의 날에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군이 민간 기업의 경영 기법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기업이 군을 배우러 올 정도다. 포스코 경영지원그룹 임직원들은 지난 3월 해군 군수사 정비창을 방문했다. 함정 정비공장을 둘러보고 ‘품질분임조활동’ 등 생산성 향상 활동을 눈여겨봤다. 부대를 찾은 변영규 포스코 경영지원그룹 마스터는 “현장 중심의 혁신활동은 우리가 적극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공군 3훈련비행단은 학군단 출신 장교의 기본비행교육 과정을 개선해 조종사 양성 비용을 1인당 1억9600만원에서 1억5200만원으로 줄였다. ROTC 장교들이 대학에서 항공운항학을 전공하며 120~200시간의 비행실기 과목을 이수한다는 점을 감안, 기초 과정을 생략한 별도의 교육 과정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공군 전체로 연간 22억원의 예산을 아꼈다.

해병대 2사단은 대공 무기인 20㎜ 벌컨포의 노리쇠뭉치(격발장치) 규격을 표준화해 연간 2억2000만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2사단은 벌컨포 작동 과정을 29단계로 분석해 고장 원인을 찾아냈다. 연간 900회씩 발생하던 고장이 10건 미만으로 감소했다.

국방부는 불필요한 업무 과정을 제거해 품질 결함을 줄이는 경영 기법인 ‘린6시그마’ 사업을 중심으로 국방경영 효율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1년 56개의 린6시그마 과제를 추진해 300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얻었다. 올해 예산 절감 목표는 580억원에 달한다.

군이 기업 경영기법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지만 보완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여전히 기술 혁신보다는 단순 예산 절감에 치중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김준식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00원을 쓰던 걸 90원으로 줄이겠다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100원을 더 지출하더라도 1000원의 효과를 내는 식의 접근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방부의 조정 기능을 강화하는 것도 과제다. 유균혜 국방부 재정계획담당관은 “지금까지는 전체 국방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상향식 활동에 의존했다”며 “경영 효율화를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하향식으로도 과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