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여행보다 사업이 재미있었던 소년…'기업 사냥꾼' 으로 날개 펴다
11세 사내아이. 보통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부모에게 어리광을 피울 나이다. 하지만 로널드 페럴먼은 양복 입은 아버지뻘 아저씨들과 기업의 미래를 놓고 토론해야 했다. 그의 아버지 회사에서다. 그는 어려서부터 ‘사업가’로 훈련받았다.

그리고 훗날 시장을 꿰뚫는 혜안을 가진, 혹은 가장 악명 높고 가차 없는 LBO(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이나 향후 현금흐름을 담보로 은행 등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인수하는 것) 전문가가 된다. 페럴먼의 재산은 120억달러(지난해 기준)로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 기준 미국 26번째, 세계 69번째 부자다. 현재 페럴먼의 지주회사인 맥앤드루앤드포브스홀딩스는 제약, 연예, 화장품, 화학 등 다양한 분야의 12개 회사를 갖고 있다.

○타고난 사업가 기질

페럴먼은 1943년 미국 남부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인 페럴먼의 가문은 보수적인 종교 전통을 지켰다. 그의 아버지 레이먼드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원래 종이회사를 운영했다. 레이먼드는 형제들과 갈등이 생기자 몬트철강이라는 회사를 직접 차렸다.

페럴먼은 젊은 시절부터 아버지의 사업에 참여했다. 페럴먼이 23살이던 무렵의 일화 한 토막. 그는 어느 날 회사 과장에게 “모든 게 잘 되고 있죠?”라고 물었다. 과장은 “걱정하지 마시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달 그 과장의 실적이 엉망으로 나왔다. 페럴먼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 과장은 “내가 잘 지내느냐고 묻는 줄 알았다”며 빈정댔다. 페럴먼은 그 과장을 다음달 해고해버렸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페럴먼은 사업을 좋아했다. 그는 “아버지는 내게 자전거 타는 법도 가르쳐주셨고, 세계 각국으로 여행도 데리고 다니셨지만 나를 매료시킨 것은 사업의 다이내믹함”이라고 회상했다.

페럴먼의 첫 기업 인수는 1961년 그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대학원(MBA) 1학년 때였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에슬링거’라는 맥주회사를 80만달러에 사들였다. 그리고 3년 뒤 100만달러의 이익을 보고 팔아버렸다. 그 뒤로도 페럴먼은 아버지를 도와 몇 개의 기업 매입·매각건을 성사시켰다. 이 과정에서 페럴먼은 그의 인생 내내 지킬 사업의 원칙을 만든다. “빚을 낸다. 회사를 산다. 필요없는 부문을 팔아 빚을 줄이고 수익을 챙긴다. 주력사업에 집중한다. 가치를 올린다. 팔거나 계속 수익을 내게 한다”가 그것이다. 페럴먼은 아버지에게 수백만달러를 벌어줬다.

1978년, 페럴먼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왔다. 그의 절친한 사업 파트너였던 아버지와의 다툼이 원인이었다. 당시 페럴먼은 벨몬트철강의 부사장이었다. 페럴먼은 아버지에게 사장으로 승진시켜 달라고 했다. 아버지의 대답은 간단했다. “싫다.” 페럴먼은 답했다. “그럼 회사를 떠나겠습니다.” 아버지의 대답은 다시 한번 간단했다. “그래라.” 그 뒤로 부자는 약 6년간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상처가 될 법도 했지만, 페럴먼은 타고난 사업가였다. “나는 그때도 교훈을 얻었다. ‘때가 오면 결정하라. 그렇지 않으면 결정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 또 당신이 결정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당신을 위해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를 유일하게 화나게 만드는 때는 스스로 결정하지 못할 때이다.”

○무자비한 인수합병(M&A)
아버지와의 이별은 결과적으론 약(藥)이 됐다. 뉴욕으로 넘어간 페럴먼은 본격적으로 스스로의 사업 역량을 펴기 시작했다. 그는 1978년 아내로부터 190만달러를 빌려 코엔햇필드라는 보석 유통회사를 매입했다. 페럴먼 단독으로는 첫 기업 매입이었다. 그의 사업 원칙에 따라 부진한 소매사업 부문을 팔고 전도유망한 도매사업 부문만 남겨 운영했다.

다음 목표는 현재 페럴먼의 지주회사가 된 맥앤드루스앤드포브스였다. 당시에는 감초와 초콜릿 등을 유통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는 10여년 전 그의 ‘경쟁자’인 아버지가 매입하려다가 실패했었다. 경영진은 법정 소송까지 불사하며 페럴먼을 막으려고 했지만, 주당 매입 단가를 조금씩 올리며 결국 회사 지분 100%를 매입했다. 페럴먼이 악명 높은 LBO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이 즈음이다. 페럴먼은 “그때야 아버지를 이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그는 각 분야의 우수 기업을 마구잡이로 인수하기 시작했다. 페럴먼은 “나는 패션 사업을 하지 않는다. 이건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도 안한다. 변화가 너무 빠르다. 부동산은 뭔지 잘 모르겠다. 이 세 가지를 빼고는 아무거나 다 한다”고 말했다.

1985년엔 역시 경영진과의 치열한 전쟁 끝에 화장품으로 유명한 레브론 그룹을 18억달러에 인수했다. 페럴먼은 레브론 그룹의 계열사로만 10여개를 인수했고, 이 과정에서 3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재 회사를 인수한 덕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페럴먼은 “나는 맥앤드루스앤드포브스 회장인데 사람들은 모두 레브론그룹 회장으로 부른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1989년엔 헐크와 아이언맨 등의 캐릭터로 유명한 마블엔터테인먼트를 8250만달러를 주고 인수했다. 7년 뒤인 1996년 페럴먼은 자신의 라이벌이자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칼 아이칸과 마블을 놓고 M&A계의 전설로 남는 ‘전쟁’을 벌였다가 패해 회사를 뺏기고 만다. 이 경험은 페럴먼 인생에 두고두고 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화려한 사생활…엄청난 기부


페럴먼은 사업 외의 일로도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는 보기 드문 ‘기부왕’이다. 항상 “약간의 자금 지원으로 사람들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내에 여성암연구센터를 세웠고, 뉴욕대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피부과학센터를 짓기도 했다. 이 밖에 수많은 문화·연구재단에 수억달러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유대인으로서 자부심이 강했던 페럴먼은 유대인 사회 지원을 위해서도 많은 돈을 기부했다.

화려한 여성편력도 또 다른 단면이다. 그는 네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했다. 첫 부인인 페이스 골드링은 이스라엘 거대 투자자의 딸이었지만 바람을 피우다 걸려 이혼당했다. 둘째 부인 클라우디아 코헨은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떴고, 패트리샤 더프라는 여성과 세 번째로 결혼했다가 역시 법정 싸움 끝에 이혼했다. 마지막으로는 유명 배우인 엘린 바킨과 결혼했지만 2006년 수백만달러의 배상금을 물고 역시 이혼했다. 현재는 다른 여성과 동거하고 있으며, 총 7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페럴먼은 “인생은 한 번뿐이고 마치 종달새처럼 즐겁게 살아야 한다”며 “사생활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자녀들에게도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